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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y 28. 2021

내 생일인데 아빠는 못 와?

남편이 7개월 하고도 열흘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일주일 남았다. 그리고 둘째 아들의 생일이 3일 남았다. 아들들은 봄이 오자마자 봄과 초여름 사이에 자기들 생일이 있다는 걸 기억해내고는 대뜸 물었다.



"엄마, 내 생일에 아빠 오지? 내 생일인데 아빠 오지?"

교대 계획이 어긋나면서 나는 본의 아니게 몇 번이나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원래는 3~4월이면 올 계획이었고 늦어도 5월에는 오니, 둘째 생일에는 올 수 있을 거라 말해뒀는데, 막판에 교대자가 휴직을 하면서 남편은 한 달을 더 승선하게 되었다.




"아빠 대신 오는 삼촌이, 오랫동안 아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잘 안 찾아온대. 그래서 이번에는 아기가 꼭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어서 휴직을 하게 됐대. 그래서 아빠가 한 달 더 있다가 집에 오게 됐대."


둘째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들고는 씩씩하게 말했다.


"그래도 내 생일에 상주 할아버지가 온대. 할아버지가 내 생일이라서 나 보러 온다고 했어."


"맞아. 우리 둘째 생일이라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엄마, 외삼촌 모두 모여서 노래도 불러주고 케이크에 불도 킬 거야. 속초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도 축하 선물을 보낸대. 아마 그날은 모든 새들도 아침부터 너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바람도 너를 만나러 올걸? 또 그날에 누가누가 축하해주러 오는지 보자."


아이는 이내 실망의 빛을 거두고 당당해졌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첫째가 얼른 끼어든다.


"엄마! 나는 생일이 6월에 있으니까, 아빠가 내 생일에는 오겠네.'

"아마, 그럴걸?"

"오예! "


신이 났던 첫째는 둘째 눈치를 슬그머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진우야, 아빠가 오면 우리 둘 다 똑같이 생일 선물 사달라고 하자. 아마 아빠는 네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큰 선물을 사주실 거야.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우리가 엄청 많이 축하해줄 거니까 슬퍼하지 마. 나도 돈 모은 걸로 엄청 좋은 선물 사줄게."


라며 꼭 안아 주자 둘째는 첫째의 품에 포옥 안겨 웃었다.





나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아주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아빠가 오랜 기간 집을 비우니까 아무래도 결핍이 있겠지. 애들이 어린 나이에 안 됐어."

"아들은 아빠가 있어야 하는데. 아빠가 없으니 힘들지?"

"여자는 남편에게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네가 아무래도 남편이랑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불쌍해."


친하다는 이름으로, 이런 섣부른 말들을 자주 한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없는 게 아닌데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들을 한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말도 있고, 때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도 있다. 상황에 따라 위로가 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는 '결핍'과 '한부모가정'에 대해 생각한다.


나처럼 안정된 직장과 친정의 지원, 사회와 단절되지 않을 여러 통로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 혼자 아들 둘을 일해가면서 본다는 건 정말이지 눈물의 연속이다. 무나 힘들고 외로운 밤이면 가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위대한 사람들의 저력과 외로움을 떠올린다. 나는 길어야 7개월짜리 독박 육아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 무게를 어떻게 이겨낼까.


그리고 결핍.


평범한 내 삶조차 '결핍'과 '결핍에의 극복' 과정이었다. 결핍이 없는 삶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크고 작은 결핍을 지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범주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들은 '결핍'된 삶이라고 규정짓고 함부로 위로한다.


물론, 우리 집 아들 둘은 일 년의 3분의 2는 아빠가 집에 없이 보낸다. 그래서 또래들보다 더 엄마를 생각하고 아빠를 더  사랑한다. 비싼 걸 사면 아빠가 더 오래 일해야 하니 싼 거만 사라는 말을 첫째가 둘째에게 할 때,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참을 수 없다고 눈물이 난다고 아이들이 그럴 때, 나는 아이들이 또래보다 한 뼘 더 성숙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이들은 어떻게 서든 적응하고 감사해하며 단단하게 자라고 있으니까.




둘째의 생일을 기념해서,

남편이 무사히 집으로 오는 걸 기념해서

이번 아들의 생일에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곳에 정기 후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따뜻함을 전해줄 거야,라고 축복해주며.


아마 둘째는 자기 생일을 기념해 본인보다 더 어린 동생을 도와 엄마랑 있을 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해주면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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