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리딩 Sep 12. 2021

떡볶이만이 나의 구원이었던 날들이여, 안녕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싶다는 아들들의 바람대로 텃밭 채소와 동네 유기농 빵으로 양껏 배를 채운 저녁, 둘째가 일찍 잠들고 첫째와 다정히 저녁 산책을 나갔다.


"엄마, 오늘 급식에 엄마가 좋아하는 떡볶이랑 오징어가 나왔어!"


"진짜? 맛있었겠다!"


"응. 엄마 생각나서 선생님한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좀 싸 달라고 했어. 비닐에 넣어 집에 가져가면 안 되냐고 물었는데 안 된대."


"우와, 엄마 좋아하는 음식을 알고 있었구나! 엄마 생각도 해주고 너무 행복하네. 그런데 학교 급식은 아이들이 배불리 먹어야 하니까 집에 가져가면 안 돼. 다음엔 엄마 생각 나도 엄마 대신 네가 배불리 먹고 와!"


"응. 근데 왜 급식은 싸가면 안 돼? 어차피 많이 남던데..."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길을 걸었다. 아이는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맛있는 음식 앞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먹이고 싶어 했구나.


5살, 7살 아들도 알고 있을 만큼 나는 떡볶이 중독자다. 맵고 들큼하고 짜고 아무튼 자극적인 떡볶이 국물에다가 바삭한 튀김을 찍어 먹으면 모든 감정들이 날아가 무념무상의 상태가 된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고 나면 먹기 전 불쾌함과 고민, 스트레스 같은 일상 찌꺼기 감정들이 사라져 버린다. 감정으로 먹고 털면 포만감과 함께 '또 먹었네 '싶은  자책이 찾아와 결국 또 다른 감정이 남는 음식, 애증의 떡볶이!


뭐 어쨌든 나는 뭔가 힘들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별 고민 없이 떡볶이를 먹어댔던 것이다. 반드시 영혼의 단짝 튀김, 어묵 국물과 함께! 뻘건 국물에 계란도 으개 떠먹으면서. (생각해보니 남편과 연애할 때도 주야장천 떡볶이집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건 스트레스라기보다 중독...)


일을 쉬면서, 시골에서 타인을 거의 만나는 일이 없으면서 나는 떡볶이를 끊었다. 뭐 자연스러운 이별이었다. 가끔 시장에 가서 포장해와 아이들과 먹은 적도 있지만 그건  달에 한 번 될까 말까였다.


텃밭을 일구면서 뜨거운 여름, 잦은 장맛비를 이겨내고 결실을 맺은 채소들을 그냥 버리기 싫어, 요리해 먹기 시작하면서 순순하고 밋밋한 맛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물기가 많은 싱그러운 채소들을 먹으며 나는 몸도 마음도 조금씩 건강해져 갔다. 그만큼 스트레스 최약체였던 멘털도 단단해져가고 있었을까?


오늘도 볕이 가장 아름답게 내리는 오후 4시 40분에 텃밭에서 한결 가을빛을 받아 껍질이 단단해진 못생긴 토마토를 몇 개 땄다. 농사지은 작은 알 양파를 넣고 소금 한 꼬집에 양배추와 닭안심살, 마늘을 넣고 토마토 수프를 끓였다. 한 그릇 퍼와 감나무 아래에 앉았다. 바질을 따와서 넣으니 그 향과 선선한 저녁 바람이 섞여 아주 환상적인 공기질을 만들어 냈다.  그 토마토 수프를 먹으며 결심했다.


건강해지기로.


건강한 음식을 소식하면서 쉽게 짜증 내거나 포기하지 않을 체력을 만들기로.



매운 떡볶이만이 나를 구원하던 날들이여,

이별을 고한다. 안녕히.

작가의 이전글 아세요? 양육에도 때가 있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