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풀벌레의 노래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끊어질 듯 이어지다 때론 드높게 솟구치다 끊어지는 그 소리가 너무나 구슬퍼서다.
'절절하다', '애절하다', '곡진하다'...
내가 아는 단어들을 총출동해도 그 울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남은 설거지거리를 툭 떨어뜨리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그 울음소리에 집중했다. 세상에, 그런 목소리는 이름조차 가지지 못할, 대략 어떤류의 곤충으로만 불리는 미물의 목소리라고 하기에 너무너무 아름답고 깊이 슬펐다.
짙은 어둠 속 풀밭 속 어딘가 있을 '너'를 찾아내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 슬프게 노래하냐고, 슬픈데 왜 자꾸 아름답단 생각이 들게 하냐고.
그 풀벌레는 어쩌다 한 번씩 며칠에 한 번씩 노래를 불렀다. 새벽녘 그 소리를 듣고 있자면, 그 미물이 지닌 인생의 내력이 있을 것 같은, 절절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나의 사소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책이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날이 자주 있었다. 세상에 글 잘 쓰고,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쩌자고 '작가'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걸까. 출간 계약을 했으면서도 나는 곧잘 위축되었다. 타 출판사에서 나의 이야기는 대중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소재라고 거절의 메일을 받았었다. 잘 팔리지 않는 글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내 오랜 꿈을 짓밟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풀벌레는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러면 나는 가을밤 그 소리를 듣다 자주 울었다. 조금 울고 나면 마음 깊이 희망이 솟았다. 괜찮아, 어제보다 조금 더 좋은 글을 써나가면 돼, 라는 희망.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는 낙관이 머물다 가면 풀벌레의 울음소리에서 슬픔이 걷히고, 아름다움만 남았다. 궁극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