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의 '관동별곡'을 참으로 좋아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표현이 절묘하기 때문이다. 직접 그곳에 가보면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오로지, 관동별곡에 나온 대로 수긍하게 된다. 작자가 45세 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며 절승을 두루 유람하고 소감과 풍경을 읊은 바에서 세기를 뛰어넘는 공감을 이끌어내기란 실로 쉽지 않은 일인데 그는 완벽하게 그 일을 해냈다.
아무튼, 학생들은 관동지방의 절경과 놀라운 표현력은 둘째치고 익숙하지 않은 표현과 단어들, 고전의 벽에 부딪혀 고개를 가로 흔든다. 그리고 나지막이 내뱉는다.
"젠장... 시험에 나올 거 엄청 많겠네."
그렇다. 문제 내기 좋은 작품이다.
작품 읽으며 그림도 그려보고, 만화로도 표현해보고 참여도를 높이려 애쓰지만 아이들은 이미 지쳤다. 그 표정을 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글에 질려버린 표정을. 매년 익숙하다.
굉장히 나른한 오후의 수업시간에 나는 아이들의 저세상 텐션과 이목을 좀 끌어보려고 사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다름 아니라 나는 강원도 남자랑 연애하고 결혼하지 않았던가. 관동별곡에 나오는 곳곳을 그 남자와 함께 했다.
양양 하조대, 친구들과 모임인 자리에서 다툼이 있어 내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데, 내 친구가 남자 친구에게 '너는 나가지마'라고 했다고 이 얼빠진 남자 친구가 나를 찾으러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 끝끝내 내가 아닌 친구만 챙겨서 (아직도 이해불가. 그와 결혼한 나는 더 이해불가) 양양 낙산사에서 헤어지고 둘이 마지막으로 속초 영랑호를 돌며 엉엉 울었던 이야기. 그가 보고 싶어 고성 팔경을 혼자 여행 갔으나 그에겐 연락을 안 했던 이야기 등등...
졸던 아이들은 5교시 졸음의 무게를 이겨내고 눈을 빛냈다. 그러다 결국 그 남자와 결혼하게 됐다는 부분에서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 어떤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경험을 해요?우리 재밌게 하려고 지어낸 이야기죠?"
그 말과 함께 수업 마치는 종이 울렸다.
아이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가끔 내가 들려주는 내 삶의 이야기가 다 지어낸 이야기 같다고. 자기는 평생 살아도 그런 경험을 다 못할 것 같다고. 나는 그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없어요. 뭐 어린이집 다니다, 학원 다니다, 학교 들어가고 학원은 더 다니고. 뭐 경험이라 할 게 없어요. 선생님 정도 되려면 더 많이 학원 다녔을 거 아니에요?"
아이의 인생에 기억이 남는 일은 학원 다니고 무언가를 항상 배우는 일이라고 했다. 그때 내가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좀 안타까웠던 거 같다. 종내 그 아이는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내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이의 딱딱한 마음과 단호함, 그것만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많이 배우고 학원도 많이 다닐 수도 있는 일이다. 배움의 기회와 여건이 되는 것은 축복이다. 그것도 인생의 경험 중 하나다.그러나 거기서 자신만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다면 인생의 자율성과 주체성은 조금도 없는 삶이 되는 건 아닐까. 자신의 인생에 '나'는 없고 '나의 이야기'도 없고, '누군가에 의해'만 남는 원망과 남 탓의 역사만 남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