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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Oct 06. 2022

얼굴 한 번 보자고, 7번 국도 여행

항해사 가족의 방선

한 달만에 만난 당신에게.


내가 생색내려는 것은 아니고, 이런 아내 없다, 알아두라고.

아이둘 데리고 당신이 정박한 곳이라면 달려가는 아내.

늘 당신을 걱정하고 사랑하고 믿는 아내. ㅋㅋ 적고보니 생색이네.

그만큼 당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힘듦을 덜어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당신의 아내라는 걸, 당신이 알아줬으면 좋겠어. 당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외로움의 고비도 넘길 수 있을 테니까.


이번 한국 올 땐 평택이나 인천 입항이라고 했던 일정에 큰 걱정 없었는데 입항 5일 전에 삼척으로 바뀌다니!

나는 연락을 받고 투덜대며 내비게이션에 '삼척기지'를 계속 검색해봤어.

고속도로를 타도, 국도를 타도 결국은 3시간 50분 거리. 아침 일찍 삼척기지에 집결해야 하니 1박을 해야할 터인데 하필 개천절이 붙은 황금연휴라 숙소 구하기도 힘들었어.

나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좀 덜 힘들지 '를 계속 생각을 하며 검색을 했어.


'당진 영덕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갈까, 예천 영주를 지나 35번 국도를 타고 울진으로 빠져나갈까. 어딜 가나 힘들 것 같은데, 예상시간보다 훨씬 많이 걸릴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좀 덜 힘들까 생각했어. 나는 피곤을 이제 즐기고 감당할 만큼 젊은 나이는 아닌가 봐. 새벽에 출발할 자신이 없어서 영덕, 울진 어디쯤에서 자고 가자 결심을 했는데 마땅한 숙소도 없더라고.


잠자리에 예민한 나와 첫째, 남은 숙소는 황금연휴에도 3만 원에서 5만 원 하는 모텔. 행여 더럽진 않을까 계속 걱정되고 회를 못 먹는 아이들의 끼니도 걱정되었어. 왜 이렇게 걱정이 는 거지? 걱정하는 사이 출발할 날이 오고 하는수없이 허름한 모텔을 예약했어.  아이들과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를 마치고 도시락을 사서 여행을 시작했어.


신기하지. 차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7번 국도로 접어들자 걱정은 사라졌어.

좀 지저분하면 어때, 좀 굶으면 어때, 맞아 그런 게 여행이잖아. 루틴에서 벗어나는 것, 우연히 어떤 풍경을 맞닥 뜨리고 새로움에 각성 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 길을 잃어 당황하고 서로 좀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고, 계획대로 안 되기도 하고 뭐 그런 것들이 다 여행의 묘미인데, 나는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아 했어. 여행의 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 것은 아이들이었어.


한적한 바닷가에서 발 좀 담그자 하는 맘으로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향했어.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길을 무작정 달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말했어.

"저기, 엄마가 좋아하는 한옥이다. 가보자."

우리는 차를 세웠어. 괴시리 한옥마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아이들은 낡은 집들 사이를 지나 언덕으로 내달렸어. 나는 꼴등으로 아이들을 따라갔어. 그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한옥들은 마치 유리병 속의 보물 같지 뭐야.

인적 드문 바닷가에서 아이들은 절대 물에 안 들어갈 거라고 했던 선언을 금방 잊었지. 그리고 아낌없이 몸을 던져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물장구를 쳤어. 나도 모래사장에 누워 아직 여름 같은 가을 태양 아래 두 눈을 질끈 감았어. 눈을 감았는데 두 눈은 화상 입은 것처럼 화끈거리고 뻑적지근했어. 강렬한 파란색에 눈이 시큰시큰했어.


 아이들은 숙소에 도착해 허름한 외관을 보더니 별로라고 실망 했어. 내부도 역시 허름했는데 아이들은 "와, 안에는 좋네"하더니 드러누웠어. 그 말에 공간 안에는 좋은 기운이 흘러넘쳤지.

스팸을 구워 김과 함께 밥을 먹은 아이들과 저녁 해변을 걸었어. 아이들은 물끄러미 자신들만 바라보던 나에게 다가와 물었어. 엄마는 재미없냐고. 지친 나의 기색을 살피던 둘째가 내 손을 가만히 잡더니 말했어.

"엄마, 내가 재밌는 것 알려줄게요. 이제 모래는 점점 차가워져서 발가락 사이에 모래가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신발을 벗어요."

나는 순순이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신발을 벗었어. 그리고 해변가를 걸었지. 점점 어둠이 가라앉는 수평선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고, 발가락 사이의 모래는 기분 좋게 서늘했고 부드러웠어. 구름 넘어 희미한 모습을 내놓은 달은 아름다웠어. 우리는 웃으며 등대 쪽으로 달려갔어. 아무도 없는 등대의 계단을 올랐고 완연히 어두워진 밤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다 내려왔어.

이내 배가 꺼진 아이들은 치킨집을 발견했고 우리는 치킨을 주문하고 앉아서 수다를 떨었어. 빨리 당신을 보고 싶다고.



 아이들과 곯아떨어지고 아침을 맞이한 우리는 당신이 배에서 먹고 싶었을 만한 음식을 사서 가기로 했는데 세상에!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오징어를 말리는 것뿐이었어.


 우리는 빈손으로 11시 30분 삼척기지에 도착했는데 그 마을에서도 빵집이나 분식점 같은 것은 없었고 치킨집도 문을 닫았지 뭐야. 그래서 우린 빈손으로 당신을 만나러 갔야 했어. 아이들은 아빠에게 보물을 준다며 조개껍질이나 해안가에 떠내려온 나무껍질을 주어서 주머니에 넣은 것들이 있었어. 그러니까 우리는 완전 빈손으로 당신을 만나러 간 건 아니었어.


아이들은 너무 들떠 있어서 당신을 본다고, 밀린 이야기를 한다고 밥도 먹지 않았어. 간식이 없기 때문에 식사를 충분히 해야 밤에 배가 고프지 않아,라고 말을 몇 차례 듣고서야 아이들은 밥을 먹기 시작했지.

당신은 이번에 선장이 되어서 얼굴빛이 좀 나아져있었어. 그래, 수항사나 수습 선장이었을 때 당신은 늘 얼굴이 부어있었지. 그만큼 일이 고되었을 거야. 한밤중이 되어서야 잠깐 우리 얼굴을 보러 올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곧장 일하러 나가야 했으니까.


나는 속으로 조금 울었어. 그동안 당신이 한 마음고생과 노고가 떠올라서. 앞으로 당신이 선장이라는 리더의 무게를 짊어져야 할 부담감이 걱정되어서. 이래저래고생이 당신 생의 몫이겠지만 나는 당신의 방에 앉아 제발 당신이 무사히 항해를 해서 우리들에게 돌아오기를, 당신뿐만 아니라 이 배의 모든 선원들이 아프거나 지치지 않고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니까.

이튿날 새벽 6시에 아이들을 깨워 서둘러 배에서 내렸어. 가스 송출 작업이 끝난 당신의 배는 이제 오만으로 출항해야 하니까. 방선 온 사람들 아침 식사도 못하고 내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얼굴 봐서 참 좋다." 였어. 그래 우리가 코로나 시기에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게 된 것이 어디야.


아이들은 당신이 다시 배에 올랐을 때 찔끔 눈물을 흘렸어. 간신히 참는 것이 보였어. 또래 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우니까 사실 나도 눈물이 나왔지만 꾹 참았어. 나만 이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세관에서 짐 검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7번 국도를 달렸어. 삼척을 지나 울진, 영덕까지 이어진 7번 국도를 달렸어. 그 사이 아주 맑았다가 아주 흐렸다가 하늘은 순식간에 바뀌기도 했지. 아이들은 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아빠가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바람이 너무 많이 불지 않고 비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어. 우리들에게 날씨는 그냥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니까.

우리는 하선 후에도 그렇게 7번 국도를 따라 당신의 배를 쫓았어. 수평선 너머 흰점이 될 때까지. 울진에서 영덕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당신의 배는 꼴딱 수평선 너머로 나아갔지. 아이들은 말없이 당신의 배를 지켜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수다를 떨기 시작했어. 그 수다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당신이 없더라도 매일 이루어지는 우리의 과업 속으로 돌아가는 신호탄이지. 


그렇게 당신을 만나러 갔다오는 길이 7번 국도 여행이 되었어. 다행히 아이들이 오는 길 이별이라는 애상 대신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의 아쉬움을 덜고 덜어주었는데 그래서 참 다행이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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