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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Aug 21. 2016

여름 아래, 시간 보내기

여름 달 아래, 솔솔 시간 흘려보내며 놀아보자.

육아휴직을 하고, 아기를 정성껏 돌보고 틈틈이 독서 백 권을 하려 마음 먹었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일을 하지 않으니.


그런데 육아가 시작되고 절대적으로 나의 의도와 시간은 다르게 흘러갔다. 피곤과 노곤함 속에서 오롯이 나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엄마로서 사치스런 생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늘어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찌어찌 보낸 하루의 끝에 책을 펴는 순간 졸기 시작했고 피곤해가 입에 달랑달랑 달려 있었다. 일을 하면 퇴근이라도 하지, 마감없이 반복되는 단순 노동에 감정 노동까지 시달리며 더위와 싸우는 일상 속에 두 눈을 감고 생각했다.


휴가가 필요해.


시원한 아이스커피, 계곡물, 책, 친구와의 수다.

무엇보다 가볍게 걷고 싶어.

아기띠없이, 아기짐 없이.


휴가가 필요했다.

나만의 쉼.




내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챈 사람은 엄마였다.


- 내가 애기 봐줄게, 놀다와.

 하루 세 시간씩.


엄마의 이 한마디에 눈물이 핑돌았다.





 집 앞 차가우 계곡물에 발 담그고 골뱅이 잡기.

어렸을 때부터 난 골뱅이 잡기 선수였다. 초강력 집중력으로 삼십 분 만에 한가득 잡기.


손가락 사이에 흐르는 물줄기, 골뱅이의 단단한 감촉.  고향을 처음 떠났을 때, 골뱅이 잡고 싶은 날씨야란 내 말에,' 골뱅이가 뭐야? 다슬기 말하는거야?'라고 물었던 친구들...



그것만으로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데크에 앉아 플라스틱 지붕에 타다닥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텃밭에서 방금 따온 옥수수를 먹는다. 생기다 만 모양인데  끝없이 보들보들 거리는 식감에 놀란다. 천둥 번개에 또 놀라며 여름 소나기를 감상한다. 입 안에 여리한 옥수수 알갱이가 터질 때마다 무더운 여름, 마음 속에 쌓였던 쾌쾌한 먼지도 날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은 이른 아침 도서관을 갔다. 어렸을 때 연필 굴리며 꽤 괜찮은 어른이 될거라 생각했었는데 조금은 그때보다 성숙한 어른이 되어 서가에 들어섰다.

 데스크 직원이 연체한 회원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어린 난 왜 그렇게 연체를 많이 했던가. 미루고 잃어버리고 독촉 받았던 늘 정신 없었던 유년기. 늘 붕뜬 마음으로 먼 미래를 헤매느라 현제를 놓치기 일쑤였던 어린 시절.

 

책장 사이를 걸어가며 검지 손가락으로 책들을 건드려보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발견했다. 빌려 얼른 읽고 싶은 마음에 집으로 가다말고 카페에 들어가 단숨에 읽어내렸다.



 담담하게 읽다가,

마지막까지 와서..

눈물이 마구 냅킨으로 눈을 가렸다.

차마 냅킨을 뗄수 없어 선그라스를 썼다.

맞은 편 아이가 엄마에게 저 사람 왜 울어라고 물었고 그들은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또 너무 더워 현기증 나고 무기력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어떤 날은 생태 박물관에 갔다.



분류되고 박제되고

그렇게 개별적 존재가 어떤 종으로 일반화된 존재들 앞에서 나는

애매해졌다.


흥미로웠던 것들이 지금은 어쩐지 슬프게 느껴졌던 것은 소멸된 이유가 인간의 무분별한 포획때문이라는 것. 앞으로도 참 많은 것들이 무분별함과 욕심으로 사라져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휴가 동안 나는 이유식  대신 부모님 아침을 챙겨드렸다. 간소하게, 텃밭에서 방금 딴 것들로.

시골의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사서 든든히 먹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엔

절친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했다.

추억이 많아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서로에게 익숙하여 침묵도 편하다는 건 편안하고 위로가 되더라.


돌이켜보면 지난 힘듦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었던 삶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가 동안 거창한 일은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것들을 선택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다시 껌딱지 아들과 집으로 컴백. 다시 아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꾸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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