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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Aug 16. 2016

낡고 빛바랜 것들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지다.

불볕 햇빛 아래, 할머니와의 대화

"그건 뭐하러 찍노? 찍을 게 있나? 요즘 젊은 아들 노상 찍어대드만."


"그냥...

아름다워서요."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그 말이 진심이지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부산에 이사 오는 날부터 맛집 나들이를 시작했었다. 어떤 집은 정말 형편없었고 어떤 집은 나만 알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쏘옥 들었었다. 그런데 부산은 단지 먹거리가 주는 즐거움만 있는 도시가 아니라는 걸 맛집 돈가스 대기표를 들고 어슬렁거리다 알게 되었다.

 내가 맛집 줄 서느라 무료한 기다림을 시작하고 있을 때, 마침 한 무리의 학생들이 연탄 배달을 하고 있었다. 골목을 걷다 마주오는 누군가와 마주치면 벽으로 서로 바짝 붙어야할, 아마 그러고도 상대의 날숨이 아슬아슬 하게 스칠 법할, 아주 오래된 골목길 사이로.

  그날 돈가스가 맛있었는지, 어떤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오직  미풍지를 덧 씌운 것 같은 빛깔의 키 작은 집들과  골목에서 비눗방울을 하늘로 쏘아올리고 있는 아이 두 명과,  연탄 배달 봉사하는 젊음들의 모습이 다시 한 번 그 곳으로 가자고 재촉하고 있었을 뿐.




 몇번이나 덧칠을 했을까. 이제는 빛바랜, 덧칠할 나무결조차 주지 않고 만갈래로 찢어지기 시작한 나무 판자집을 보고, 감히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즈막한 키 작은 집에서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머리가 닿지 않을, 할머니가 나오셔서 쨍스러운 햇빛 아래 빨래를 널고 계셨다. 이 모습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회색 시멘트 골목길을 초록으로 물 들인 고추 화분이 아름답다는 것도 너무 감상적인 곳 같아 부끄러웠다.

 





그녀의 생활 터전에 불쑥 들어온 내가, 함부로 사진 찍고 열어진 문틈으로 생활을 엿보는 것으로 비춰질까봐 조마조마 했다. 아마 편한 생활  속에서 느긋하게 살다가 신기한듯 골목을 누비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이중적인 것 같다는 마음도 있었다.  골목 초입, 사진 몇장을 찍고 나는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대신 골목 사이로 보이는, 원근법 조차 무시하며 서 있는 고층 아파트가 이고 있는 파란 하늘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며 있었다.

 간판 없는 구멍가게 앞, 바람을 찾아 나온 할머니가 서 있는 내가 불편했는지 자꾸 자리를 권했다. 파란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려 가자 고개를 숙였는데도 지붕에 머리를 부딪혔다.


"너무 더운 날씨에요. 잠을 통 못잤어요."


 "아이고,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위는 두 눈 질끈 감고 참을 수 있다. 끝이 있고 지나가니깐. 더위는 참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참을 수 없는건 아픔이다. 수술을 해도 시도 때도 찾아오는 통증. 끝이 없는 아픔이다."


"어디가 아프신데요?"


"다. 나이들면 안 아픈데가 없다. 그런데 지난달 허리 수술 한데는 말도 못하게 아프다. 더위 따위 잊혀질 만큼.


언제 나이를 이렇게 먹었을꼬. 나 늙는 줄 모르고 저 할머니들 늙었네, 우리 엄마 나이 들어 보이네 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폭삭 늙고 아픈 내가 있드라. 늙어도 아프지 않으면 서럽지나 않을 것을 맨날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수천 번도 더 한다. 얼매나 아픈지. 젊을 때 아프지 않았을 때 그것이 좋은지도 모르고 폭삭 늙고 병 들었드라."



 잡음도  자신을 멈추고 할머니 말에 귀 기울이듯 정적만이 골목에 존재했다. 덕분에 힘없는 할머니 목소리가 조근조근 선명하게 들려왔다. 골목길 철학자 같은 할머니 한마디 한마디가 흩어지지 않고 가슴에 쌓였다.


 아기 키우느라 집 안에만 있어서 답답했는데 여기 오니 좋다는 나의 말에 할머니는 자식들 얘기도 얼핏얼핏 꺼내시다 고생스러웠지만 마냥 좋았던 그 때가 꿈 같다며 슬며시 웃었다. 


나는 껌 한통을 샀고, 더위에 눅눅해진 껌을 야무지게 종이와 분리해 씹으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달 돌아가신 나의 친할머니가 보고 싶었고 얼핏 할머니 품에서 풍겨오던 마른 풀 냄새가 훅 느껴진 것 같기도 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잠에서 깬 아들이 엄마를 많이 찾고 있다고. 할머니는 얼라 울까 한 발자국도 못 떠나며 애 키웠었는데 요즘은 시대가 변한 것 깉다고. 그래도 애 엄마가 이리 돌아다니면 아가 불안하다고, 두손을 펄펄 날려 어서 가란 손짓을 해보이셨다.


낡고 빛바랜, 것들.


어느 순간 나는 그런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아름답다란 말을 덧씌워 주고 싶어졌다.  그것들의 세월이 주는 소박한 경건함과 굳건함에 빠졌다. 정겹고 가슴 찡하게 아름답다.




"전봇대에 매달려 있는 저 종이 아름다워요. 어렸을 때 골목 많은 곳에서 살았었는데 이 곳에 오니 골목도 있고, 좋아요."


 역시나 적절하지 않은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게 뭐 그리 대수냐는 듯  할머니는 아, 하시더니 하늘을 보며 느긋한 부채질을 계속 하셨다.

 한 평 남짓의 슈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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