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리딩 Sep 11. 2016

대체로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

 일을 잠시 내려놓을 즈음 나는 "좀 쉬고 싶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격정적이고 셈 많고 과시욕 있었던 20대를 지나온 나의 30대는 무난하고 소탈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일도 안정적이었으며 힘든 일이 생기면 토닥여줄 친구들과 깊이있는 조언을 해주는 멋진 멘토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쉬고 싶었다.

쉬면서 뭔가를 뒤집어보고  싶었다.

그러면 내 마음 밑바닥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있는 집중력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평온한 것 같은 겉과 다르게 내면은 무엇인가에 항상 습관처럼 몸달아 조바심 내고,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데 그게 무엇인지 꼭 누리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더라.  그것들로부터 당분간 떨어져 그것이 진짜 내 욕망인지 타인이 심어준 성공의 이미지인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 속마음을 나조차 알기 힘들었던 그 때, 가지지 못한 것들에 질투하고 남과 비교하는 관계에 감정소모하며 지내던 그 때로부터 한 발 물러나고 싶었다.


차분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지금 순간을 당연한듯  감정을 억제하고, 시간을 통제하는, 그런 삶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휴직.


일을 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생계는 생각보다 강하게 내 삶을 지배하고 두려움을 통제하고 있었으니. 그런데 11년 만에 휴직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육아휴직. 육아가 과연 쉼이 될까?


 아니! 절대 아니라는 것을 대한민국 엄마, 아니 전 세계 엄마들은 알 것이다. 그런데 육아의 힘듦 사이를 비집고 내가 원했던 '쉼'은 스스로의 욕망과 생각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확실하게 제공하고 있다. 오히려 육아를 함으로써 내 삶더 깊고 집요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으니 더 심도있고 내밀하게 나를 돌아보게 되니 말이다.



 휴직을 함으로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사람들과 의무적으로 만나야 했던 생활에서 한 발자국 물러선 나는 하루 종일 아이와 친구가 되어 이야기하고 소소한 놀이를 하며 논다. 만남과 외출이 줄어들자 소비가 줄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하루를 무엇을 하며 주어진 24시간을 보낼까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숫자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1년에 책 100권 읽기에 도전하고 있다. 이제껏 책을 읽으며 일년에 얼마만큼의 책을 읽었는지 한 번도 세어본 적이 없다. 읽은 것을 기록하지 않고 지나갈 때도 있지만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꼭 메모를 해놓는다. 그동안 좋아하고 익숙한 장르의 문학만 골랐는데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고르며 숨은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을 즐기고 있다.



의무처럼 책을 파고 들다가도 어느 날은 그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차가운 마루바닥에 누워 천장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 소리없이 스스슥 지나가는 시간을 느낀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맞춰보는 실없는 게임도 재밌게 한다. 읽었던 책 구절 중 일부의 의미가 남아 맴돌고 맴돈다. 책을 읽었다고 내 삶이 더 나아지고 있는걸까, 자문해보지만 확신은 안든다. 나아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작가들이 던지는 생각들과 의미들이 쌓여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확신은 든다. 소심하고 타인의 말에 잘 휘둘리고 약했던 아이가, 좀더 단단한 자신을 찾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 위로 받으며  괴로움을 조금씩 벗어나,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어른이 되었다. 타인의 말은 나에게 심리적으로 상처를 줄 지언정 내 근본적인 삶을 뒤흔들 수 없음을 알았다. 열정이 없고 쉽게 지치며 소심하고 부족하지만 이런 나의 삶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어제보다는 내가 더 괜찮은 간이 된 것 같다...이런 생각들을 방바닥에 누워 새삼스럽게 한다.



아이를 들쳐 안고 가급적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혹은 너무 소란스러워 아이의 칭얼거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묻혀버리는 카페에 간다. 나는 왜 이렇게 카페를 좋아할까? 한 잔에 백반집 한상 차림의 가격과 대등한 커피를 하루에 한 잔씩 마시는 백수의 삶이 왜 좋은걸까?


 그곳에는 꽤 괜찮은 생각들이 불시에 찾아오는 빈도가 높다. 우연히 나오는 추억이 있는 음악이 던지는 파장, 집과 다른 풍경이 주는 낯섦에 대한 탐색, 진한 커피향이 주는 후각적 감미로움, 다양한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좇아 떠나는 상상여행. 내가 좋아하는 구석진 자리를 찾아 평일 한가로운 오전을 누리고 있노라면 인생 별거 없어도 행복하네란 생각이 든다.



복잡한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면 밥을 든든히 먹인 아이와 함께 동네 가보지 못했던, 맛집 리스트에 올라오지 못하고 알려지지도 않은 그냥 평범하고 소박한 밥집에 가 밥 한 그릇을 사먹는다. 자고로 밥은 내가 할 때보다 남이 차려줄 때 제일 맛있다는 말이 진리임을 느끼며, 소박하게 차려진 밥을 배불리 먹는다. 주인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장사를 하며 사는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며.  그러다 문득 어렸을 때 작지만 정갈한 식당 주인이 되어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정성 껏 먹고 위로를 받고 기분이 좋아져 나가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음을 떠올려 본다.




 다이어트를 그만 두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가보고 싶었던 음식점도 체크해놓았다가 꼬박꼬박 가서 양껏 먹는다. 미각이 주는 감미로움에 빠져 고민 따위 사라져버린다. 맛있는 것은 집에서 흉내내어 요리해보며 우리집만의 특급 레시피를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살이 쪘지만 빼야겠다는 압박감보다 좀더 맛에 집중해서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자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다이어트를 그만 두자 최신 유행하는 패션에서도 점차 멀어졌다. 이제껏 의무적, 주기적으로 샀던 옷과 가방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고 낡은 물건과 옷은 처분했다. 버리기 아까운 가방과 시계는 가지고 싶어하는 이웃이 있다면 받아줘서 오히려 고마운 마음으로 선물했다. 휴직하는 동안 편하게 입을 옷들만 남겼다. 물건이 줄어드니 청소할 시간이 줄었고 산만하지 않아 여유가 생겼다. 시간의 여유는 반드시 심리적으로 더 큰 여유를 준다. 잡다한 옷과 가방, 신발이 사라지니 이제껏 내가 찾아 헤맸던 스타일이 생겼다.  남겨놓은 옷가지들이 나란 사람은 편안하고 심플한 스타일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남겨진 물건이 나를 규정하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산책하기 좋은 늦은 오후가 되면 아들과 함께 도시에 군데군데 남아 있는 자연을 찾아 소풍을 떠난다.

새소리, 풀잎, 바람, 작은 벌레들의 움직임과 소리에 경이로워하는 아들을 보는 것이 좋다. 한참을 그렇게 있으면 오감이 깨어나는듯  명료해진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고 수없이 많은 어른들은 조언했었다. 어른이 된 내가 아이들이 말하는 꿈과 생각에 대해 뜬구름 잡는 생각만하다가 황금같은 시간과 기회가 날아간다고, 싫어도 해야하는 것도 하며  살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을 견디면 더 좋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미래가 있다고. 과연 그럴까?


 자신의 목소리를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 힘듦을 견디고 자발적으로 싫은 것도 해내는 주체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진정 싫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내면의 목소리를 알기위해서는 대체로 하고 싶은 것만하며 빈둥거리는 시간도 필요한듯 하다. 의미찾기의 일환으로써 말이다.


나는 이제껏 싫은 일들 속을 헤맬 때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어른이니 해야만한다고  체면을 걸었다. 그래야 삶이 나아진다고. 


그런데 1년 6개월을 대체적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지내다보니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하단 확신이 들었다. 느리고 게으르게 마음이 이끄는대로 뒹굴거리다보니 낯선 '나'의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익숙한 마음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이런 조그만 의미부여가 자주, 불시에 지금이 행복하단 생각이 들게 한다.


작은 것을 들여다보고 소소한 일들에 만족감이 드는 지금, 대체로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아래, 시간 보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