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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20. 2016

9월의 어느 날

불안한 나날들



명절 연휴 내내 아들이 아팠다.

열이 38도가 넘는 아들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시댁가는 비행기를 탔다. 아들은 비행기에서 39도가 넘었고 왈콱 토를 했다. 나는 아이의 윗옷을 벗기며 주저 앉아 울고 싶었다.

왜 못 간다는 말을 못 했을까, 시부모님 서운하신 것보다 아들 안 아픈 게 더 중요한데, 그깟 싫은 소리 좀 들으면 어때서...


도착해서 한 숨도 못 자고 끙끙거리는 아기를 안아 토닥이고, 미지근한 손수건으로 몸을 닦아내면서 나의 판단력 부족과 착함컴플렉스를 질책했다.



아기는 열이 내리자 열꽃이 폈다.

그리고 오랫만에 보는 시댁 식구들에게 웃어 주다가도 곧잘 짜증을 냈다.



연휴 주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정에 들렀다.

아기 컨디션이 좋아진데다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친정이 있어서다.


친정 아버지는 우리가 오자 너무 좋아

아기를 꼭 안고 산책을 나갔다.


덕분에 아들은  풀벌레 테러를 당했다.


벌레에 수 십방 물린 아들은 두드러기처럼 온  다리에 반점이 생겼고 간지러워 고통스러워 했다.


아빠는 내 눈치를 살폈고

나는 속으로 치솟는 짜증과 불만을 삭이고 삭였다.



아들이 피곤을 해소하느라 곤히 잠든

연휴 마지막 날,

 독서에 굶주렸던 나는 책을 내리 세 권 읽었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며

서늘함을 느꼈고 

책을 읽어도 마음은 심숭생숭 했다.


그러고보니

9월이 왔나 싶었는데 벌써 한참이 지났다.


집으로 왔다.




아기 목욕 시키는데 진동이 울렸다.


보일러가 고장인가 싶어 두리번 거리는데 아파트 안내 방송이 나와 지진임을 알렸다.


집으로 돌아오면 편할 줄 알았는데

아이가 나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극도로 피곤하다.



쏟아지는 지진 정보 속에 어떤 것이 맞는지

가늠해보고, 만일 사태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본다. 지나갈 것이니 그냥 기다리라는 식의  분위기 속에서 정부가 신속히 구조해주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예상이 더 피곤을 가중  시킨다. 세월호 사건 후 세상을 보이는대로 순수히 믿는 것이 힘들어졌다.


친정에서 가져 온 텃밭 채소들로

아기 이유식과 나의 점심을

무심한듯, 정성스레 차렸다.


아이는 다 나았다.

그런데

아이는

집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강풍에 흔들리는 창문에도


놀다 말고 귀를 기울인다.


그게 슬프다.


자꾸 내 곁으로 달려오고 내 주위를 맴돈다.


그게 짠하다.


내리 하루종일,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불안해서   자꾸 지진 기사 검색하고,

가방 싸고,

친정에 가 있을까 남편과 상의하고

그랬던 분위기를 요녀석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자기도 불안해 한다.



사실, 나는 그리 죽음이 두럽지 않다.


열심히 하루하루,

사랑하는 사람과 내 분수에 맞게 살았다.


그런데

아들만 보면 자꾸 무슨일이 생기면

우짜나 싶어 가슴이 저려온다.


불안한 나날들.


나에게 소원은

다른 부모들이 그렇듯


그저 아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아들이 태어나고 매순간 행복하지만

연애시절 너무 상대를 사랑해 생기는 불안 비슷한 것을 아들에게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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