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두근거림은 어디로 갔을까? 대답해봐, 남편!
- 자긴 나보면 아직도 설레니?
- 아마, 결혼하고 계속 상대방 때문에 두근거린다면 심장이 터져버릴거야. 다 심장이 우릴 배려해서라고. 적당히 뛰는 게. 의리로 산다는 말 못 들어 봤어?
- 난 아직도 설레는데? 자긴 아니구나.
- 뻥 까시네. 이런 아줌마보고 뭐가 설레냐? 애 본다고 어제 머리도 못 감았구만.
-그래도 예뻐.
- 그래도 이쁘다는 게 아내로서, 애 엄마로서 이쁘다는거지? 본분에 충실하니깐? 여자로서는 사실 좀 예전같지 않잖아. 그치?
남편은 아니라는 말 대신, 그게 진정 예쁜 것 아니냐는 말을 들릴듯 말듯 하며 돌아섰다. 순간 나의 친구가 오랜만에 만났을 때 글썽였던 눈물이 떠올랐다.
' 너 진짜 분위기 있고 예뻤었는데..... 눈 하얀 자위가 노랗게 됐어. 에고, 아기 낳고 아주 건장해졌다. 얼굴은 왜 이렇게 탔어....'
그녀가 하는 말에 마음 상하는 일은 결코 없었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지만,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내 모습에 자꾸만 스스로 의기소침해졌다.
- 아무래도 당신은 내가 만만해서 나랑 결혼 한 것 같아. 자기 마음대로 하니까 좋지? 나처럼 쉬운 남자랑 사니까 편하지?
- 어머, 어떻게 알았대? 자기처럼 쉬운 남자가 어디 흔해? 어서 출근하세요.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아침 내내 아이와 있는 힘껏 놀아주고 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우리'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정말 설렘은 존재하고 있는 것을까? '우리' 사이에? 엊그제 텔레비전을 보다 우연해 '내 귀의 캔디'란 프로그램을 잠깐 보았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남편에게 그랬었다.
- 우리도 저렇게 밤새 통화했을 때가 있었는데.
서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빨리 알고 싶어서, 당신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부드러움이 있어서, 당신이 내뱉는 단어들의 조합에 너무 설레 조금이라도 더 통화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에게도.
부천과 속초, 한국과 태평양이나 대서양 어디 사이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만나 인연이 되었던 그 때, 우리는 '목소리' 만으로, 작은 숨결 한가닥 만으로도 수많은 감정이 오갔어. 그 어떤 단어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고이고이 마음에 담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단어들의 조합이 이제껏 알지 못했던 깊이로 내 삶을 울렸었는데.
처음엔 단지 목소리와 목소리가 만나 즐겁고 재밌고 해서 그렇게 시간 보내는 것이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그 소리의 부딪힘에 마음이 실리고 너와 내가 먼 거리를 날아 올라 영혼이 만나는 것 같이 온 몸이 간질거렸어. 바로 옆에서 네가 속삭이는 것 같았고 작은 숨결에도 가슴이 찌르르 울렸어.
.... 그 땐 정말 설렜었는데.
- 지금은 안그래?
- 그냥 대화를 해도 집중이 좀 잘 안돼. 자꾸 산만해져.
남편이 가만히 퉁퉁부운 내 다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 그 때처럼 다시 설레게 해줄게. 정말이야.
우리는 결혼하고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면서 아주 사적인 시간들을 내려놓았다. 고작해야 서로가 배려를 해주는 황금같은 주말 몇 시간을 쪼개 번갈아가며 운동 갔다오거나 카페에 가거나 책을 읽었다. 핸드폰 메시지는 아들의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었으며 서로의 얼굴보다 아들의 얼굴을 찍는 일상이 자연스러웠다. 이제 서로의 목소리보다 더 확실한 시각으로 얼굴을 매 순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그만큼 매순간 더 확실한 울림을 공유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물론 설렘의 기준으로 말이다.
나는 남편이 설레게 해주겠다는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그리고 그 말이 절대 가볍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진심을 담아 말을 건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매순간 노력한다. 그 노력이 결혼할 때 '두고 봐, 정말 시집 잘 갔네란 말 듣게 해줄거야, 내가 정말 고생 안시키고 행복하게 해줄거야.'라고 말한 자신과의 혹은 나와의 약속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노력한다. 그것이 노력인지 모를 정도로, 원래 그러한 사람인 것처럼.
그는 항상 웃으면서 집에 들어온다. 그가 집으로 가져온 한 줌의 분위기는 행복함이다. 가령 그가 직장에서 혼이 나갈 정도로 시달리다 왔다고 해도, 저녁을 먹으며 얼마나 말도 안되게 까이고 까였는지 담담하게 말했던 날도 그는 웃으며 문을 열었고 기어오는 아들과 나를 향해 해맑게 웃었다.
그는 순수하게 나를 감동시킨다. 아들을 낳았다고 값비싼 목걸이와 가방을 선물하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 남편에게 너무너무 고맙다고 말했을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남자다운 사람처럼 득의양양해 했지만, 사실 나에게 감동을 주었던 건 더 사소한 데 있었다.
책 읽을 때 쓰라며 직접 만든 책갈피를 책에 끼워주었을 때, 비 오는 날 자신의 어깨가 다 젖도록 내게 우산을 기울였을 때, 서점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선물했을 때, 나중에 나만을 위한 서점을 만들어 줄거라고 약속했을 때, 처갓집에 늘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가줄 때. 주말에 아기 볼 테니 카페에 두어 시간이라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등 떠밀 때, 혼자 보내기 싫다고 얼마 안되는 거리라도 같이 가자 나서줄 때...... 사소한 감동이 결혼하고 끊임없이 밀려왔던 것은 그가 기울이는 작은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는 절대 쉬운 남자가 아니다. 고집 센 그는 매순간 원래 그러한 사람인 것처럼 내 앞에서 순둥이가 된다. 그게 때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 더 그에게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예전처럼 거세게 설레지 않는다.
그와 함께하는 지금의 내 심장은 더 이상 찌릿하지도 불안하게 날뛰어 잠 못들게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평온하게 느긋하게 그를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아마도 그에게 익숙해져서 더 큰 믿음으로 삶의 안정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예전에 지도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른하게 앉아 위태롭게 내뱉던 말이.
- 이 나이 되니 새로운 것을 해도 가슴이 설레질 않아. 우스갯소리로 이 나이에 가슴 설렐 일은 불륜 밖에 없다고 하더니 정말 그래.
그리고 가끔, 아주 오래된 연인을 두고 여러 남자와 바람을 폈던 직장 동료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 사실 남자친구가 잘못한 거지. 날 외롭게 놔두고 일만 하잖아. 난 누구도 유혹할 수 있어. 그런데 그냥 시간을 보내며 그만 바라보기엔 내가 너무 아깝잖아. 내 젊음이. 야, 근데 넌 왜 내가 안 부러워?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이, 그럴 수도 있었겠다 싶은 나이가 됐다.
하지만 오랜 시간 내가 꿈 꿔온 삶은 그런 모습과는 달랐다. 진중하고 든든한 오랜 친구 같은 동반자를 꼭 찾고 싶었던 나는 오랜 시간 그려온, 딱 그 모습 그대로의 그를 만났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의 안목을 마구마구 칭찬하게끔 만드는 남편.
그만 보면 따뜻한 밥부터 지어 얼른 먹이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제일 먼저 데리고 가 나의 취향을 공유하고 싶고, 그의 귀를 기분 좋게 파주며 좋은 말만 많이 들으라고 속삭여주고 싶어진다. 그는 내가 가장 혼신의 힘을 다해 알아가고 있는 가까우면서 먼 타인이며 그의 속마음을 의심해보기도 하지만 가장 신뢰하는 타인이다. 그를 행복하게 해 세상 힘듦에서 가장 멀리 떨어뜨려 놓고 많은 상처들로부터 보호하고 싶다. 자주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 주고 싶다.
설레는가 아닌가는 지금 내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작은 노력들이 주는 일상의 미적지근하지만 딱 기분 좋은 온도의 미미한 설렘. 그 온도가 지금이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나에게 설렘은 거센 파도가 매섭게 던지는 전율이 아니라 오랜 시간 파도에 담금질한 동글동글 몽돌이 부딪히는 어여쁘고 경쾌한 소리 같은 것.
익숙하고 오래된 관계를 지속적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낯섦이 주는 시작의 설렘보다 더 더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그와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이 좋다. 우리는 설레기 위한 노력보다 이 기분 좋은 온도의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아줌마적 마인드로 그와 썸을 타며 살 것이다. 까짓거 밤새 설레지 않아도 된다. 따뜻한 밥을 정성껏하고 그의 노고에 고마움을 마구 표현하고 오랜 연인이 하는 빈티지한 농담들을 던지며 살 것이다. 어쩌다 아들이 협조해 식구들 모두 푹잠 자게 돼 컨디션이 좋다면 때론 연애시절 번개같은 설렘도 가끔 느끼며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