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날들의 누적, 삼십대의 자아 찾기.
늦은 밤 카톡 보내서 죄송한데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샘이랑은 이런 얘기 자연스럽게 했었던 게 기억나서..
선생님처럼 살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자유롭게. 안정적이고 늘 행복해 보이고. 선생님 옆에 있으면 편안해요. 전 지금 너무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래요. 어떻게 살아야 하죠?
그런데 샘,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뭘까요?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죠? 갑자기 아무 것도 모르겠어요.
샘이 아는 나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공부만 잘 하면 인정 받을 줄 알았는데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재수 해야 하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딜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지금이 청춘이니까 그럴 때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런 말은 그냥 지나면 답이 있다는 너무 무책임한 말이니까요.
답을 바라지 않는 것 같은 넋두리가 늦은 밤 끊임없이 카톡 소리를 울리며 어둠을 가른다. 내가 뭐라 위로의 말을 채 생각도 하기 전 또 다른 질문거리가 쏟아졌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이해해보려 애썼는데 나의 대답과는 별도로 이 아이의 마음의 답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단지, 불안함과 두려움을 함께 울리고 싶은 이가 필요한 것 뿐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에 동의가 필요한 것일 수도.
그리고 한 달 뒤, 안부 문자가 왔다. 재수를 하는 대신 그냥 계속 다니기로 했다는. 자신을 찾기 위한 시작을 했다는.
나는 학교 다닐 때 이 아이보다 더 공부를 못 했다.
인정 받고 싶었지만 재주도, 능력도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해 허영으로 나를 쌓아 올리기도 했다. 멋진 생활, 타인이 부러워하는 삶, 꽤 그럴듯해 보이는 경력을 만들기 위해 애썼었다. 그것이 목표이고 삶의 열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다들 꿈을 가지라고 닥달을 했다. 하고 싶은 게 뭐냐는 물음에 아직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어른들은 내가 너무 나태하다고, 꿈을 가지는 만큼 성장한다고 닥달했다.
좇기듯 꿈을 가졌다. 그러나 더 솔직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싫어서. 고만고만한 삶들에 비교 당하는 것이 싫어서, 그 비교들 사이에서 우위에 서고 싶어서. 허영에다 욕망을 쌓고 그 위에 '나 자신'을 세웠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고 3 담임을 4년째 하던 어느 날, 나는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마치고 홍대로 차를 몰았다. 양화대교를 건널 때 즈음, 내일 수업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걸 떠올렸다.
홍대 입구 골목길에 아무렇게나 차를 쑤셔 넣고 문을 잠갔을 때 내일 일교시부터 수업이 있다는 걸, 오늘 야자를 튄 녀석 다섯 명을 어떻게 해야할지 정하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
친구들과 자주 갔었던, 이제는 오래돼 빛바랜 흰색 홍차 전문점을 지나갈 때, 그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떠올려 봤다.
혼자 스타벅스에 앉아 라떼를 주문했을 때, 오늘 이 커피가 다섯 잔 째라는 걸, 하루의 지루함과 공허를 커피로 넘기며 하루를 겨우겨우 보내고 있음을 자각했다.
멍하니 지나가는 젊은 청춘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제 내 나이 서른이라는 것을, 학생 그 누구도 나를 무서워하거나 권위있다고 생각하지 않음을, 그래서 그 공간에서 나는 괴롭고 타인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살고 있음을 떠올렸다.
커피를 한 두 모금 마셨을 자정 무렵,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아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얼핏 꽤 자신을 아끼고 보듬으며 사는 것 같았으나 작은 말, 스쳐가는 눈빛에도 그 의미를 곱씹어보며 괴로워하는 자존감 낮은 사람이었음을 느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외면했으나 나는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우고 '공중에서 머뭇'거리며 '희망하는 내용은 질투뿐'인 젊음이었다.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 조차 모르고 그 욕망이 내 것인지 조차 잘 모르는 허수아비.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올 즈음, 더 늦기 전에 꽤 괜찮은,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자존감은 어디로 갔을까? 어두운 도로 위, 은은한 가로등이 빛을 박아 숨쉬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믿지 못하고 못마땅해하는데 내가 누구의 인생에 대해 감히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교사라는 권위로 뭐라 할 수가 있겠는가. 괴로웠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진심어린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진심으로 다가가야 했다. 진심으로 살기 위해 걷고 걸으며 마음 들여다보기를 했다. 스스로 타인과 줄 세우기 식의 삶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긍정의 말들과 명사들의 인생에서 길을 찾았다.
스스로를 믿는 힘, 자신을 긍정하는 삶은 나에게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매일 조금의 칭찬과 마음을 닦는 일, 명상. 부정적인 기억에 대한 이해와 위로. 그 작은 일들이 매일매일 반복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늘 타인의 평가에 흔들렸던 삶이 었음을 이해하자 오히려 평온해졌다.
어떤 날은 지금이 너무 싫어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어 떠났다. 감정의 과잉에 빠져 걷다 걷다 울고, 그러다 허약해진 몸과 마음으로 풍토병에 걸려 귀국한 뒤 3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었다. 겨우 회복이 돼 6인실로 옮겨져 한가롭게 책 읽으며 퇴원 날짜를 기다리고 있을 때, 옆 침대 미애 아줌마는 복수가 나날이 차 언제 퇴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앞 침대 할머니가 중환자실로 급히 옮겨졌을 때 주치의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단지 저 할머니보다 젊었기 때문이라고. 아니면 고열에 뇌가 녹거나 전신에 퍼진 패혈증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퇴원하고 정갈한 삶을 살고 싶어져서 지니고 있는 물건을 플리마켓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병문안 왔던 친구들에게 저녁을 샀다. 그리고 시에나리온에 있는 후원 아동에게 남은 돈을 보냈다. 물건이 휑해지자 내가 조금 보였다. 남겨진 좋아하는 옷들, 즐겨 읽는 책, 버리지 못한 편지들. 내 삶의 소비 패턴이 그 어떤 것보다 정직하게 나의 취향을 알려주었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를 내려 주었다.
그렇게 애써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려고도, 부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마음 쓰지 못했던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했다. 딱딱했던 마음의 근육과 사고가 조금씩 말랑해짐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집중할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스스로 성찰하는 힘이 조금 생기자 마음이 편해졌다.
매일 매일 조금씩 나는 '나' 답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