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기 겁나는 애증의 관계
어렸을 때 부모로 부터 받은 상처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일들이 엊그제 일어난 일인듯 억울해했고 분노로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어떻게 어른이란 사람들이 아무런 힘없었던 어린 아이에게.. 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그들의 아무 생각없이 툭 던지던 말들이 수 십년이 지나 어른이 된 우리의 가슴에 아직도 박혀 어떤 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부모의 좋지 못한 사이가, 행복하지 않았던 엄마가, 무심했던 아빠가 자신들의 자존감을 낮게 만들었다고 어떤 아이의 엄마는 울부짖었다. 자신은 그렇게 아이를 키우지 않겠노라며.
그 자리 우리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내보이며 엉엉 울다가 서로를 다독이다가 그렇게 헤어졌다.
영하의 칼바람을 맞으며 돌아오는 길.
아이 셋을 키우며 일 하느라 늘 고단해했던,
걱정이 많아 불면증을 앓았던,
그럼에도 늘 케이크며 도너츠를 손수 만들어줬던,
주말이면 이젤을 걸치고 풍경 좋은 곳에 스케치를 하러 떠났던,
세 명의 아이들에게 명절 마다, 소풍 때 마다 새옷을 사 입혔던,
어느 요일이 좋냐고 물으면 월요일은 나와 놀 수 있는 주말이 오 일 남아서 좋고 화요일은 사 일 남아서 좋고.. 날마다 나와 함께 해서 좋지 않은 날이 없다고 했던,
급식이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 점심 저녁 도시락에 쌀밥 위에 콩으로 하트를 박아줬던,
대화시간이 없어 쪽지로 형편없던 내 성적과 건강을 응원해줬던,
깡마르고 부지런하고 감수성이 예민해 슬픔이 많았던 따뜻한 엄마가 자꾸만 떠올랐다.
왜 우리는 인생에서 고민하고 슬펐던 저녁보다 환희에 찼던 인생의 어느 날을 더 빨리 떠올리면서 부모가 준 아픔을 그다지도 뿌리깊게 박고 살아가는 걸까. 가장 가까운 사이어서 그런 상처는 필연일 수밖에 없을텐데.
늘 미안하고 고맙고 조금은 미운, 많이 사랑하는 나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