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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r 13. 2016

나는 결코 먼지를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과거의 나, 토닥토닥.

집에 먼지가 그렇게 많이 쌓일 수 있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알았다. 닦아도 닦아도 먼지는 살짝 자리만 피해서 약 올리듯 내려 앉았다. 아기는 방바닥을 너른 바다 항해하듯 이리저리       지치지않는 체력으로 기어다녔다. 먼지 위를 항해하는 돗단배처럼. 아이를 일으켜 안으면 옷에 묻어있는 먼지의 물결.


 형광등보다 햇빛이 더 찬란하다는 것도 아이를 낳고 알았다.

나는 어두컴컴한 사각 상자 속에서 일하다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지는 석양 빛을 받으며 퇴근하는, 낮의 찬란한 햇빛을 노동의 대가로 지불하는 월급쟁이였다. 낮이고 밤이고 형광등 불빛이 제일 밝은 줄 알고 살고 있는 미미한 존재. 조금 일찍 퇴근하는 날은 황금빛 석양을 등지고 걸어가기도 했는데 아무리 눈부신 빛들의 향연일지라도 대낮의 청량함은 오간 데 없고 단지 허무 섞인 쓸쓸함만 내 긴 그림자처럼 드리울 뿐이었다.


 두 시가 되면 최고조로 밝아지는 우리의 작은 거실에 구석구석 숨어 있던 먼지들이 황금빛 밝은 햇살 속에 부끄럽게 모습을 드러낼 때면, 아침부터 수십 번 방을 닦았던 나는 결코 먼지를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먼지같이 보잘 것 없던 나는,  결코 그 먼지 조차 이기지 못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들어 괜시리 힘이 빠졌다.



나의 이 아이는 자라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가늠하고 있노라면 갑자기 모든 것이 암담해지기도 했다. 나보다 좀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아들의 수북한 검은 머리를 쓸어내려본다.



아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보듬어 주기위해서는 나는 내 삶을 긍정해야 했다. 내 삶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데 아이도 그런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불행하니까. 아이들은 그런 내적 불행은 드러나지 않아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내면화하니까, 나는 그게 싫었다. 그렇다고 내가 진짜로 내 삶이 불행하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실패와 뼈 아프게 힘들었던 감정적 순간들을 긍정으로 바꾸며 의미 부여하는 것이 때론 힘들게 느껴졌을 뿐.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를 하며 나의 초라하고 외로웠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종이처럼 힘없이 구겨지던 자존감, 너무 부끄러워 자꾸 길어지는 변명으로 채우려했던 침묵의 시간, 조금씩 잘라버리고 싶었던 부정적인 경험들의 조각조각.


 아기를 보며  때때로 자주 애써 잊혀졌던 일들이 무방비로 파고 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삶을 긍정하려  애썼다. 구겨진 종이를 쫘악쫘악 펴서  구겨졌던 자존감도 구김없이 판판하게 펴내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을 살거라고 믿었던 미래의 나를 가로 막았던 것은 나를 향한 부정적 언어들이었을까, 내가 스스로를 끌어내렸던 가벼운 체념들이었을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의 소심함이었을까.


하나하나 되짚으며 그 때의 상처받았던 나를 토닥였다. 지나고 보니 그렇게까지 동굴로 스스로를 몰아들어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너만의 문제가 아니었어라고 위로하면서.

 하나하나 불시에 파고드는 슬펐던 기억을 억누르려하지 않고 여리고 어렸던 나를 위로하고 애도하는 동안 마음이 편안지곤 했다.


 그러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던걸까 생각했다. 분명 어렸을 적 나는 어른이 되고, 서른이 훌쩍 넘으면 긍정적인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되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날마다 먼지와 씨름이라니.

학교 앞 건강한 맛 떡볶이 장사, 묵직한 채도 아래 묵직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는 북카페 주인, 직업 작가로 진한 에스프레소와 오래된 만년필로 아침을 시작하는 삶... 그리 영향력이 큰 직업을 꿈꾼 적도 없는데  자연스레 어른이 되면 무엇인가가 되어 있을 것만 같았었다. 막연하게  꿈꾸었던 작가의 꿈은 아련하게 멀게만 느껴지는 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도 가장 절실한 꿈. 외롭고 수줍어 언제 어디서나 누가 나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를 항상 가늠했던 유치원 시절 부터 누구를 만나든 '제 꿈은 작가에요'라고 말했었다. 책이 나의 가장 든든하고 변함없는 친구였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더 이루고 싶어졌던 작가의 꿈은 말할수록 대단하고 어렵게 느껴져 매일 소설의 첫 장만 쓰다 말기를 수 백 번도 더 반복하며 서른의 중반을 맞이하게 됐다. 정말 너와 잘  어울려라고 말해 준 아이와 절친이 되었고, 너라면 특별한 글을 쓸거야라고 말해준 남자와 연애를 해보기도 했다. 나를 인정해 주는 느낌에 속아서.


두어 번의 신춘문예에 탈락했고, 동생 이름으로 내 본 크고 작은 백일장에서 작은 상을 탔고,  지도 교수와의 면담에서 '전 임용고시 안 보고 작가될 거에요'라고 말했다가 '실력이 없으면 이용을 당하기 쉽다'라는 자명하지만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었다. 시험 안보고 문창과로 다시 가겠다는 고집에 아버지는 '글은 머리가 좋아야 쓰는 거지'라는 말을 들었고, 여기저기 넣어본 글에 대한 아무런 소식이 없고서야 체념을 했다.  제대로 된 노력도 안하고 뜬구름 그만잡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지, 그리고 글을 써야지했던 다짐들은 또 너무나 쉽게 작은 장벽에 체념으로 날아가버렸다.


아들을 낳고 나서야 더이상 뜬구름으로 내 꿈을 쉽게 말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재능이 없어서, 끈기가 부족해서 번번이 못 한다고 말하는 대신 지금 하나씩 해보자고 방바닥을 박박 닦으며 다짐했다. 아들이 나에게서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꿈만 꾸는 삶을 배운다면 그게 제일 견디지 못할 것 같았기에.  내 삶에서 가장 싫었던 면을 닮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들이 행복이 묻어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다.

아들이 너무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구속받아 움츠러들지 않았음 좋겠다.

아들이 너무 쉽게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들이 자라, 건강한 자아를 지니고 씩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들이 훗날 엄마에게 받은 의미 있는 유산이 그녀와 함께했던 아름다웠던 날들이라 말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아들이 꿈만 꾸다 좌절하는 인생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최고의 성실과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그렇게 살아야겠다.


 '보통의 삶이라도 괜찮아. 그리고 먼지같이 하찮은 존재여도 괜찮아. 내 삶을 나는 찾아가고 있으니까.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삶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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