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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r 18. 2016

일상을 여행처럼

누군가의 흔적에 대한 기억

 라오스 비엔티엔에서 마지막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식사를 하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구석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여자애가 진홍색 소매로 눈물을 슬쩍 훔치는 모습을 봤는데 그녀가 숨기고 싶어할 모습 같아 얼른 눈을 돌렸다. 물컵을 테이블에 놓는 그녀의 손 끝이 하도 떨리고 있어 음식을 먹으면서도 자꾸만 그녀에게 눈이 갔었다. 그녀는 빨개진 코끝을 비비고는 데스크에 앉아 어딘가를 심각하게 응시했다. 우리가 값을 치를 때까지 꼼짝 않고 그 모습 그대로 굳어진 것처럼.


 나에게 그 여행이 어땠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내 사진기를 보더니 옆에서 혼자 놀던 아이를 수건으로 깨끗이 얼굴을 닦아 꽃단장 시키곤 어서 찍으라고 했던 과일을 파는 젊은 엄마. 아이와 똑같이 생긴 엄마의 얼굴에서 자식을 향한 아름다운 자부심이 읽혀졌었다.

  매일 아침 토스트를 사먹었던 두 아이의 엄마는 손님이 뜸해진 다음에야 세상 가장 어여쁜 미소로 자신을 기다리던 어린 아이들 옷 매무새를 매만져 주었다. 두 아이들은 지루한 얼굴로 엄마 뒷 모습을 지키다 그제서야 아이다운 얼굴로 어리광을 부렸었다.

  같은 시간 일몰을 보러 나가면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몰을 한참 바라보던 중년의 여행객. 좁은 루앙프라방에서 며칠을 머무르며 종종 마주쳤지만 항상 혼자였던 그녀는 혼자여서 더 아름다워 보였었다.  

 흙처럼 깡마른 노인은 둥근 안경을 연신 치켜올리며 모자이크에 떨어져 나간 유리조각을 꼼꼼하게 붙여 나갔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그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었다.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왓 씨앙통의 유리 모자이크를 보수하는 그는 매일 같이 만나는 이 경이로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무앙응오이에서 무작정 걷다 나온 열가구 남짓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은 순수한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내 뒤를 숨바꼭질 하듯 졸졸 따라 다녔었다. 안으려 하면 도망가고 사탕을 꺼내도 수줍어 가까이 오지 않고 그렇게 마을을 떠날 즈음 나와 나란히 걸을 마음의 곁을 주었었다. 그리고 그 무리에서 동떨어져 서성이던 주황색 줄무늬 셔츠의 아기는 내가 손 흔들자 울음을 터뜨렸었다. 남자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잘 모를 아이를 안아 올려 토닥이고 내려놓자 다른 아이들이 부러움의 빛으로 그 아이 주변에 몰려 들었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은 내게 어떤식으로든 풍경이 되어주었다.



 그들의 일상이 궁금하지만 그 어떤 개입없이 관찰자로 머물다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여행자. 그것이 내 몫이었다.


그들의 삶을 곁에 두고 나는 스쳐 지나가지만  그들이 건네는 인간적인 삶의 조각을 소중히 간직하며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가끔 일상에 숨이 막혀 올 때면, 그 조각들을 슬며시 꺼내보곤 한다.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러다 무료한 일상의 반복과 내 삶에 대한 회의가 몰려 들어 떠나고 싶어지면 당장  일상의 여행을 떠난다.

사람 풍경이 있는 시장으로.




부산 자갈치 시장에  놀러 갔을 때 어렸던 내 손을 잡고 엄마가 들 뜬 목소리로 말했었다.  

"엄마가 부산 살 때, 삶이 지치고 힘들면 새벽 자갈치 시장에 와서 무작정 걸었어. 생선을 막 들여와 정리하고 파는 사람들을 볼 때 어지러웠던 마음들이 더이상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잠잠해졌었거든. 아침부터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엄마의 말 때문이었을까, 나는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 시험에 떨어졌을 때,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을 때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자갈치 시장에 왔다. 그리고 생활의 소란 한가운데서 타박타박 걸으며 금방 죽었을, 아직도 생명의 여운을 머금고 있는 생선들과 그 생선들의 소유권을 넘기는 사람들을 한없이 구경하다 해질 무렵 돌아가곤 했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어지럽던 마음이 잠잠해져 스스로도 어찌 못할 우울 속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갈치가 아니더라도 가끔 위로가 필요하거나 무료해질 때면 시장을 걷는다. 사람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바라보며,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내 삶을 생각하며, 타박타박 걷는 . 그렇게 걷노라면 짧은 시간 일상을 떠나온 여행자가 되어 나는 또 인간적인 삶의 조각들을 찾아 풍경을 만들어 보는 여유가 생긴다.




시장을 즐겁게 여행하는 내 멋대로 방법!



첫 번째, 시장오면 시장 커피를 마실 것

고급진 커피 취향 일단 접고 시장 오면 시장의 맛을 그대로 즐겨볼 것. 그래서 커피 리어카 아줌마에게 한 잔의 커피를  꼭꼭 사마시는데 믹스 커피라도 맛이 다 다르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커피 리어카를 열심히 끌고 다니시던 상주 오일장의 커피 아저씨.  사실 장날이 아닐 때도 그는 커피를 팔러 다니는데 믹스커피가 대중화 되니 그렇게 벌이가 좋진 않으리라. 엄마도 나 따라 시장 오면 커피를 사드시더니, 꼭 이 아저씨에게서만 커피를 드신단다. 성실한 삶의 자세가 한 잔의 커피에 녹아 있다고.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 리어카를 몰고 불편한 몸으로 이리저리 붐비는 시장길을 누비시는 모습이 딱해 한 잔 마셨는데 두 눈이 번쩍 뜨일 인생 커피였다. 값싼 커피가 아니구나 싶었다. 깔끔하고 부지런한 모습에서 아저씨가 빛나보였다. 호로록 마시고 한 잔 더 주문해 시장 골목을 걷는데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잡은 할머니가 차가운 빵을 드시고 계셨다. 봄 쑥 한 무더기를 앞에 두고.

" 할머니, 바람이 찬데 커피랑 같이 드세요. 방금 탄 거에요."

"아이고. 잘 마실게."

 할머니도 그날 마신  리어카 아저씨의 커피가 인생 커피가 되지 않으셨을까.




두 번째, 시장 패션에 감탄을!



 아기를 낳고, 친정에 몸조리차 가있었는데 초가을인데 어찌나 춥던지 시장에 가 조끼를 샀다. 단돈 오천원에  산 빨강 꽃무늬 조끼는 전국 어느 시장을 가도 걸려있는 인기 상품이었다. 입어 보고 나니 왜 할머니들이 이런 옷을 사 입는지 알겠더라. 후끈후끈해 몸조리 자알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조끼를 고르고 값을 지불하자 주인 아줌마가 "아이고, 젊은 언니야가 첫 개시를 해주네. 고맙게. 앞으로 잘 될란가보다"

 쾌활하게 말씀하셨는데 내 마음은 아팠다.

 저녁 다섯 시에 첫 개시......





세 번째, 시장 음식에 관대해지기




 푼돈으로 배를 두둑히 한다는 건 마음 푸근해지는 일이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 아니더라도 그냥 무심코 사먹었을 때, 생각 외로 너무 맛있을 때! 보물을 찾은 어린아이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 전 시장 안  꽤나 소문난 칼국수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소문만큼 사람들로 붐볐다. 스무살 갓 넘은 것 같은 아가씨가 서빙을 하느라 애를 먹어 얼굴이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두서없는 주문과 주방장의 재빠른 칼국수 대령.

"이거 이번 테이블"

아가씨가 위태롭게 칼국수 세 그릇을 가지고 우리 테이블로 왔다.

"이거 우리가 주문한 거 아닌데요."

아가씨가 주방을 보자, 주방장은 화를 내며

"야, 삼 번!! 왜 저렇게 헤매?"

아가씨는 국수 그릇을 가져가며 입술을 삐죽였다. 분명 주방장의 잘못인데 아가씨는 억울한지 내내 퉁퉁부은 얼굴로 테이블을 오갔다. 그러다 우리 옆 테이블로 왔을 때, 나는 수줍어 9개월 된 아들을 빌려,

"후야, 일하는 누나 이쁘다 그치?"

 아들은 빤히 아가씨를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아가씨는 못들은 척했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녀가

"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했다. 그 목소리가 더 이뻐 밝게 인사하고 나왔다. 나의 소박한 관심이 그녀에게 잠깐의 행복이 되었길.



네 번째, 낡고 오래된 물건 감상하기



 

 상주 오일장을 걷노라면 하루에 하나도 안 팔릴 것 같은 물건을 팔며 게으른 하품을 하는 아저씨들을 만난다. 테이프를 파는 아저씨, 낡은 엘피판을 상자째 내 놓은 아저씨, 빛에 반짝이는 고무신. 오래된 사람들을 위한 오래된 물건들을 감상하며 걸으면 그 모습 그대로 풍경이 된다. 오래된 물건이 주는 잔잔하고 짠한 느낌.




다섯 번째, 길에서 물건 파는 할머니에게 깍지 않고 물건 사기


 왜 이렇게 가슴이 짠한가. 할머니들이 차가운 길거리에 옹기종기 앉아 자신의 물건이 팔리길 바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오래된 눈빛. 굳은살이 박힌 딱딱한 손.

  우리 외증조할머니는 장날이 열리면 아주 작은 손 구르마에  텃밭에서 일군 당신의 소박한 보물거리를 싣고 장으로 향했었다. 정확하게 구십도로 굽은 몸으로 땅을 보며 한동안 걷다, 가끔 고개를 또 구십도로 들어 정면을 향했다. 그 모습이 멀리서도 짠해보여 하굣길에 할머닐 만나면 시장까지 느릿느릿 할머니의 발걸음에 맞춰 걷곤 했다. 열살 남짓의 발걸음과 아흔 남짓의 발걸음은 묘하게 잘 맞았다. 아니, 외증조 할머니의 발걸음을 맞추려, 할머니가 나 때문에 더 빨리 걸으려 하지 않게 신경써서 나란히 걸었던 그 길바닥의 추억. 증조할머니는 그렇게 걸어 시장 구석 바닥에 다섯 봉지 남짓의 나물을 팔려고 하루 종일 앉아계셨다.

 어느날 우리반 남학생이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너네 꼬부랑할머니, 맨날 구석에 앉아서 물건 잘 안 팔린대. 그래서 내가 우리 엄마한테 말해서 우리집 가게 앞에서 자리 내주라 했다. 아무나 우리집 앞에 못 앉아." 

' 그렇구나. 시장에도 자리가 있구나.'를 그 때 처음 알았다. 증조할머니는 아들을 못 낳아 평생 혼자 나와 살아야했고, 본인 소유의 땅 한 평 없었는데 시장 길목 한 바닥도 마음대로 못 앉다 가셨다. 하굣길에 할머니늘 만나, '할매 저에요.' 해도 한참 흐릿한 눈동자로 빤히 쳐다보다, 어두운 귀와 눈으로 있는 힘을 다해 나를 가만히 가만히 한참을 훑다 활짝 웃으시며 아는 체를 하셨었다. 항상 흙냄새가 나던 빼짝마른 풀잎같았던 증조할머니가 앉아 있던 자리.  그리고 그녀 앞에 놓여 있던 나물들.

 시장을 거닐다 만나는 할머니들에게서 우리 증조할머니의 향기를 맡는다.


그렇게

일상을 여행처럼 그렇게 시장을 걷다가  사람들이 흩어놓은 여운을 품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를 스쳐간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나의 삶을 곱씹으면서. 떠난다는 것의 설렘은 여유를 가지고 돌아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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