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수국의 계절이 돌아왔다. 묵직한 습기와 함께.
둘째를 낳고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난, 침대에 누워 엷디 엷은 물색의 수국을 그리워했고, 첫째는 침대 위를 뛰어다니며 마음껏 뛰어노는 바깥 세상을 그리워했다.
드디어 주말.
남편은 첫째를 데리고 나 대신 수국을 보러 나섰다.
첫째는 너무 신나게 콩콩거리며 꽃밭을 뛰어다녔다고 했다. 남편은 가만 있지를 않는 첫째 사진을 찍으며 엄마가 왔으면 정말 좋아했을건데, 라고 아들에게 말했다고 했다.
집에서 둘째를 돌보며 남편이 전송한 아들의 사진을 보다 웃음이 터졌다. 모조리 흔들린 사진. 정신없이 꽃 사이를 뛰어다니며 호기심에 가만 있질 못할 아들이 선명히 그려졌다. 진땀 흘리며 그 꽁무니를 따라다닐 남편도.
엄마는 꽃을 좋아해, 라고 첫째에게 계속 말했다고 했다. 동행한 동생이 그 말을 전했을 때 나는 그의 마음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꽃을 좋아하는 걸 알지만 꽃 선물은 결혼 후 단 한 번만 한 남자다. 그렇다고 무심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주말 부부하느라 밤 늦게 서울행 기차를 타고와 시간을 보내느라고,
아이가 생기고는 조금이라도 빨리 퇴근해 집안일 바통터치 해주느라고.
마음이 있으면 꽃다발 따위 쉽게 사지 않겠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꽃보다 일 분 일 초라도 빨리와 쉬게 해주는 것이 더 좋았다.
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같이 꽃을 보러가고 싶은 간질거림이 시작될 때 함께 나서는 시간이 좋고,
함께 못하면 그 아름다운 순간에 나를 떠올려주는 그 마음이 좋다.
사실 나는 꽃을 받는 것 보다는 꽃을 매게로 끌려오는 그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음이 더 좋다.
그가 수국으로 뒤덮인 그 곳에서 나를 수시로 떠올리고 같이 하지 못함을 아쉬워한 그 마음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