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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10. 2017

우리의 결혼 기념일

- 결혼한 지 3년째인가? 4년째인가?

- 4년째. 우리 2013년에 결혼했어.


숫자에 의도적으로 둔했다가 이제는 정말로 둔해져버린 나는...4년이 짧게도 느껴지고 길게도 느껴진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종종 지루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지만 가끔 미칠듯이 즐겁고 너무 행복해 두렵기도 한 시간들. 감정의 요동을 정리할 수 있을까.


어쨌든,

시간은 금방 지나가.



그는 항해사였고 나는 교사이다.

우리는 결혼을 하고도 일년에 겨우 두 달 남짓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했고, 그는 꿈을 접고 꿈과 가까운 일을 하면서도 우리가 같이 있을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같이 있어도 당신의 꿈을 포기하는 건 싫다는 나의 말에, 그는 웃으며 그런 거 아니라고, 내가 그의 또다른 꿈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함께 하기로 했음에도 주말 부부가 되었다. 드디어 금요일. 일이 끝나면 그가 부산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새벽이 되어서야 부천에 도착하거나,  한 두 시간을 더 빨리 보고 싶어 두 배의 차비를 내고 ktx를 타기도 했다. 주말 부부였기 때문에 나는 그가 오기  혼자 출산을 했고 조리원에서도 주말이 오기 전까지 혼자 아기를 봤다. 나는 주말이라도 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매일 통화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 그는 늘 마음이 바빴다. 빨리 주말에 우리를 보러 오고 싶어서.


 드디어 육아휴직을 하면서 부산에서 2년을 살게 되었다.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아기만 보는 게 외롭지 않냐는 그의 말에  갑자기 외로운 것 같기도 했지만 저녁이면 그가 꼬박꼬박 집으로 오는 것이 좋았다.


둘째를 낳았다. 첫째는 동생이 밉다며 안지도 못하게 했고 자주 감기에 걸리고 이유없이 열이 났다.  첫째는 힘겹게 눈을 뜨고 엄마, 아빠 사랑해..하고는 열기운에 축쳐저 잠들곤 했다. 그 와중에 나도 그도 감기에 걸렸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감기 걸렸네, 괜찮아? 라고 묻지도 못하고 지내고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살았다.





 나는 이번 결혼 기념일에 대학생 시절 힘들면 바다 보러 와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셨던 조선 비치 호텔에 아이들만 데리고 가서 잘 생각이었다. 그냥 하염없이 바다가 보고 싶어서. 우리는 왜인지도 모르고 일주일째 말을 안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우리와의 점심 약속을 잊고 골프 치러 가겠다고 한 것이 서운해서 였는지, 매일 피곤함에 절여져 잠도 잘 못드는 일상에 짜증이 났는지 나는 머리가 계속 아팠고, 무언가에 화가 나 있었다. 자꾸만 짜증이 난 건.. 현실의 크고 작은 문제들과 아주 사소한 것들에 영향을 받는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결혼 기념일 전날, 출장에서 돌아온 그가 무심한듯  말했다.

- 힐튼 예약했어.

- 미쳤어? 그 돈 나 주지. 애들 전집 사주게.

-  전집 살 돈도 줄게. 우리에게 휴식이 필요해. 가자.

-휴...

-참, 나 반값에 오션뷰, 조식까지 예약했다. 잘 했지?



나는 반값이란 말에 그제서야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게.




 -나 서울지사에서 계속 오라고 연락와.

그럼 출퇴근 힘들어도 같이 있을 수 있잖아.

-흔들려?

-아직 애들이 어리니까.

- 그래도 우리가 젊었을 때 많이 벌어 놔야하지 않을까. 연차도 휴가도 잘 못 쓰는데, 육상직 있어봤자 나만 독박 육아야. 차라리 일년에 두 세달 바짝 애들이랑 놀아주는게...

-혼자 안 힘들겠어?

-각오하고 있어.


갑자기 울컥 했다. 나는 자신이 있는걸까, 그를 일년에 단 몇 번만 보며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이들과 다정히 놀아주는 그의 등을 보며 자꾸 눈이 아파오고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을 되뇌였다.


일단 결정을 했으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 되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해. 그렇지?


나는 조용히 그의 등 뒤에서 중얼거렸다.




아이들이 잠들고, 그는 욕조에 물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오늘 밤은 내가 아이들 볼테니 푹 자라고 말하곤 골아 떨어졌다. 물론 그는 밤새 곤히 잠 들었고 아이들이 내 침대에서만 부대끼느라 나는 한숨도 제대로 못 잤다. 그는 커피를 내려주며 외쳤다.


-조식이 우리를 기다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우리의 생활에 대한 자축 한 마디 없이 후다닥 피곤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일탈을 마감했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던 결혼 기념일을 보내며 나의 짜증을 이렇게 정의했다.


- 이제는 가장 좋은 것이 뭔지 선택을 잘 못하겠어.

당신이 옆에 있는 것이 좋은지, 돈을 많이 벌어 오는 게 좋은지. 내가 휴직을 더 하는게 좋은지, 집을 옮기는 게 좋은지. 내가 한 선택에 자꾸 겁이 나. 그래서 자꾸 피곤하고 짜증이 났었던 것 같아. 그 선택들을 되뇌이느라고. 잘 할 수 있다고 자꾸 다짐하느라고...  

당신이 옆에 있든 없든, 나는 잘 할 수 있다고 용기내는데 가끔 무신경하게 구는 당신이 미웠다고. 그냥 당신이 좋기만 했던 3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자주 피곤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까지 나누고 싶었던 그 겹겹의 시간이 과거에 덧씌워지고 있다고.  당신은 편안하면서도 또 다른 나인듯 완전히 낯선  타인인듯 그런 우리의 4년이 지나가면.. 어떤 시간들이 올까. 어쨌든 결론은 이런 감정도 사랑인, 아주 자연스러운 사랑인듯 하다고.


 요즘 내가 좀 그랬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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