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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25. 2017

별 다른 게 없는 행복

너를 기른다는 것

인스타그램에서 친구의 남미 일주 사진을 실시간으로 본다. 일을 그만 두고 사랑을 찾아 떠난 후배의 유럽여행 사진을 본다. 모르는 사람들의 정갈한 밥상 사진, 깔끔한 집.. 그들의 삶의 일부를 보며 생각한다. 아, 그들은 진짜 뭔가 좋아보여.


어둡고 좁고 장난감으로 널부러진 이 집을 떠나 바람 좀 실컷 쐬고 책도 마음 껏 읽고 무엇보다 푹 자고 싶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이런 행복과는 거리가 먼, 고단하지만 충만한 사랑을 느끼는 '엄마'로서의 삶이다.


아이를 재우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에서 비행기 표를 검색해 본다. 자정의 칠흑같은 어둠 속에 그것만이 구원의 빛이라는 듯 핸드폰 불빛은 비현실적으로 밝다. 그래서 피로하다. 이 맘 때의 하와이는 어떨까, 따뜻한 나라의 푸른 바다에서 스노쿨링은 어떨까, 한가로이 카페에 앉아 모닝 커피를 마시고 싶다...

나의 욕망에 기대 몇 번의 클릭으로 최저가 티겟을 결제 단계까지 가본다. 몇 번의 클릭으로 단숨에 지금 여기 반대편 숙소를 비교 검색해 본다.


그러다 더 훌쩍 지나, 밤이 주는 치유의 시간을 넘어 새벽녘에서야 핸드폰을 저 멀리 더 어두운 어디 구석으로 밀어넣는다. 두 눈을 감았다 떠도 어둠. 그 속에서 나는 하나의 그림이 떠올라 피식 웃는다.


남편이 아들에게 가르쳐 주는 젓가락질.

서툰 젓가락질로 고구마 줄기를 줄기차게 집어 먹는 아들. 엄마 아~하며 떨어질까 부들부들 떨며 입안에 얼른 털어넣어주는 밥알들.


처음 먹어보는 사탕 맛에 두 눈이 커지는 아들,

그 다음부터 아탕 아탕 줘, 떼 쓰기를 시작한 아들.


형아가 있으면 울지도 않고 있다가 형이 어린이집 가면 비로소 울며 안아달라는 백일 둘째.

걸레질 할 때도 엄마 시선 한 번 마주치고자 계속 날 따라다니는 둘째의 눈길.

그러다 잠이 더 들기 전에

낯섦과 새로움, 한가로움과 설렘이 주는 떠낢의 미학을 넘어서 머무름과 기다림, 천천히 사는 지금의 삶의 한 장면이 스르륵 지나간다.


말 배우는 아들이 아침마다 처음으로 구사하는 새로운 문장. 그것들이 주는 의미와 발음이 처음 생겨난 것처럼 나에게 닿아 퍼지는 경이로움. 불명확한 자음과 모음의 결합이 주는 유아의 말소리. 귀여운 말투와 기발한 단어의 조합.


아빠, 언제 와?

진우 왜 울어?

이거 모양?...세상과 타인을 향한 관심의 표현들. 늘어가는 의사표현들.


그러다 진짜 잠이 든다.


내가 지향하는 정갈한 생활은 저 멀리 가고 있지만, 사진 한장으로 담을 수 없는 아이들과의 '생활'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 시간이 찰라임을 알기 때문에 지독한 피로와 늪같은 우울도 떨쳐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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