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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17. 2023

성냥팔이 개의 운명

문장소감 365 #day10

페키니즈구조대라는 강아지 구조모임이 있다. 몇몇 개인이 모여 카카오톡 오픈톡방과 인스타그램 등 SNS 기반으로 유기된 페키를 구조하여 임시보호나 입양을 보내는 일을 주로 한다. 구조한 아이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으면 치료비를 모금하여  병원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강아지도 그곳을 통해 입양했다. 경기남부 위성도시 어느 주택가를 떠도는 아이를 지나가는 행인이 신고했다고 한다. 강아지는 시보호소로 인계되었고, 그 보호소는 안락사가 없는 곳이었다. 강아지는 그 곳에서 6개월을 체류하며 병들어 갔다. 감염병 상식 1호, 개체 밀집 지역에서는 건강한 개체들도 질병에 노출되어 병에 걸릴 수 있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보호소 직원은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연신 자기를 봐 달라고 앞 발을 들어 개장 안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일일이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없었지만, 아주 열렬히 원하는 아이, 의기소침해서 구석에 물러 나 있는 아이들의 잔등은 한 번씩 쓸어 주었다.

 

그러다 구조대 레이더망에 이 강아지가 들어 왔다. '안락사가 없다는 이유로 구조 우선순위에서 번번이 밀린 강아지 요즘 몸 여기저기가 망가져 피오줌을 싸고 밥도 잘 못 먹는다' 보호소에서 먼저 이 아이를 구조해 갈 것을 요청했다. 보호소 인력이 부족하여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고 있다고. 누가 아이를 구조해서 치료만이라도 달라고.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 강아지는 보호소를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의 유기견, 유기묘, 기타 유기 동물 보호소는 민간시설 대부분이다. 선한 뜻을 가지고 적은 후원금으로 어렵게 운영하다 보니, 열악한 곳이 많다. 강아지 보호소에는 강아지를 위한 잠자리 제공, 음식, 청결한 환경 제공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겠지만 제대로 갖춰지기는 요원하다.


언제나 노동력이 부족하다. 기본적인 시설 유지와 강아지 사료, 위생 용품들을 구비할 자금도 부족하지만.  항상 제일 시급하고 간절한 것은 보호소를 유지할 기본적인 노동력 제공인 것이다. 일시적인 봉사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어떤 날은 밥을 주다, 안 줄 수 없지 않은가. 어떤 날은, 똥을 치우다 안 치울 수 없지 않은가. 강아지 사료를 주고 똥을 치우느라 정작 자기 자신은 밥도, 화장실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말에 마음이  시렸다.


보호소에 구조되어 임시보호를 거쳐 우리 집에 입양 오게 된 이 강아지의 운명은 그나마 나았다. 원주인의 손을 떠난 동물들의 운명은 처참하다.

보호소라도 오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보호소 밖은 지옥이다. 굵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로드킬을 당한다. 그 편은 운이 좋을지도 모른다. 'n 번 방'처럼 고어물을 찾는 빌런들의 유희 대상이 되는 것은 피했으니.


얼마 전 길을 걷다, 모바일 스피커를 켜둔 채 뭔가를 보는 이십 대 남성의 옆을 지나쳤다. 끄아아악! 불쾌한 소리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남성이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크고 선명해졌다. 그것은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 그만 멈춰달라는 의사 표현조차 흔들리는, 날카로움 내 심장이 순식간에 조여드는 소리였다.  그 사람은 소리와 영상에 중독되어 있었다. 모바일에 시선을 꽂은 채, 비명소리를 들으며 전혀 주변을 의식하지 않았다. 오소소 소름 돋았다. 내가 잘못 들었겠지, 제발 잘못 들은 것이길. 약 20미터 정도 뒤따라 걸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확실했다. 내장이 뒤틀리는 듯 처절하고 날카로운 비명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고양이나 강아지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미 우리 주변의 악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 정부는 유대인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 최고 명령의 위치에 있었던 아이히만이 1960년 대 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재판을 모두 지켜본 뒤 유대인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가 남긴 비평이다.


유대인 말살을 저지른 아이히만은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이었으며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


긴 회색 모직 코트를 입고, 귀 위까지 머리를 짧게 자른, M사의 모던 로퍼를 신은 평범한 악인의 얼굴.  동물 학대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 만드는 자.

선의 얼굴을 한 악인들. 보호소에 있는 유기견을 입양하여 고의로 학대하고 살해한 자들. 신이 있어, 그의 처분을 기다리보다는 개인적인 처단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복수를 위해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이 가진 것과 같이 빌런이 닿으면 터져버리는 광선검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보건교사 안은영 관련 이미지 중




  

오늘, 페키니즈구조대에서 한 마리 유기견 소식이 들어왔다. 평택의 어느 외곽 마을 농가인지, 공가인지 을씨년스러운 폐가 마당에 강아지가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 겨울에요? 야외예요? 쇠사슬에요? 페키니즈가요?


 페키니즈는 중국 황실에서 2천 년 이상을 실내에서 키운 견종이다. 실내에 적합하게 진화되었다. 특정 견종을 선호하거나 그 견종만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의 성격과 유전적 특질을 파악하면 더 조화롭게 살 수 있다.


이 견종은 야외에서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털이 길고 엉키기 쉽기 때문에 진흙이 금방 엉겨 붙는다. 곧  털이 무거워지고 오염되어 피부병이 생길 수 있다. 추위에도 약하다. 단두종이라 기관지가 약해 기침을 하거나, 바이러스, 세균에 감염되어 폐렴이 걸리기 쉽다. 발톱이 길게 자라면 스스로 바닥을 긁어 갉아낼 줄도 모른다. 발톱이 발가락 사고를 파고들어 가면 고통에 그대로 노출된다. 무엇보다 야외에 방치되어 있으니 적절한 예방접종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모기를 매개로 감염되는 심장사사충 구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발견자가 사진을 보내왔다. 누더기처럼 형체를 알기 어려운, 스스로 움직이니 살아있는 유기체구나. 싶은 생명이 맨 흙바닥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사람이 다가가니 똥과 진흙 덩어리를 당알당알 매단 꼬리가 살랑거렸다. 인스타그램의 사회적 역할이랄까. 나는 강아지 산책을 하다 인스타그램으로 이 소식을 접했다. 다행히 페키니즈구조대 활동가분이 SNS와 오픈톡방에 소식을 퍼 나르고, 그렇게 연결연결, 당장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 사연을 확인하겠다는 자원자가 나타났다.


강아지는 2년도 훨씬 전에 어떤 사람이 키우다 파양 했고, 입양, 파양을 몇 번 반복하다가 이 농가에 버려졌다고 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음식 냄새를 맡고 주변을 배회하던 강아지. 근처 농가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부부가 이 아이에게 밥과 물을 챙겨줬다고 했다. 그러다 부인이 명으로 아파 본국으로 돌아간 것이 2년 전. 그들은 자신들도 아프면서 홀로 남겨질 강아지의 안위를 걱정했다고 한다. 인근 마을 사람은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생명이 오고 가니 밥 주고, 물 주고 죽지 않을 만큼 살폈다. 


발견자가 아이를 구조하려고 한 것은 지난여름, 강아지를 제대로 보살피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밥 주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강아지를 데려가는 걸 반대하여, 아이 구조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오늘, 무슨 일인지,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그 사람이 강아지를 포기했다. 애초 그 사람의 재산도 아니었지만.


구조되어 온 강아지는 병원에 가, 기초검사를 받았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이 순간에는 기도했다. '제발 심장사상충 말기만 아니게 해 주세요.', '죽을병만 아니게 해 주세요'

그러나 강아지는 심장사상충 말기였다. 치료가 까다롭고, 치료 중에 사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간신히 구조하여 따뜻한 집밥을 먹나 했는데.


이것만은 다행일까. 만약 강아지에게 영혼이 있어 그동안 이런 기도를 해 왔다면,

"오늘은 이제 그만 이 추위를 끝내주세요."

 오늘밤은 영하의 추운 겨울밤, 성냥팔이 소녀처럼 환영을 보지 않아도 된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살아서 누리는 홈, 스위트 홈에 갈 거니까.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배불리 마친 뒤, 깨끗하고 포근한 쿠션 위에서, 버라이어티 했던 하루를 뒤로 한 채, 까무룩 단 잠에 들기를.

  

한 해의 마지막날이었다. 배고픔과 추위 속에 소녀는 모자도 없고 신발도 없이 매정한 아버지에 내몰려 성냥을 판다. 그러나 온종일 아무도 사주지 않자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에 매를 맞을 생각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길거리 담벼락에 쭈그려 앉아있다.

<성냥팔이 소녀, 안데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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