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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19. 2023

'봄날'이 된 성냥팔이 개

문장소감 365 #DAY 11

발견자, 구조자, 임보자, 후원자로 이어지는 유기견 구조의 선순환 시스템 속에서 강아지는 신속하게 학대 장소에서 병원으로 이동,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혈액검사, 초음파, 방사선 촬영 등 몇 가지 검사를 거쳤다. 가장 우려했던 것은 야외에서 2년 이상 방치되었던 만큼 심장사상충 감염이었다, 모기를 매개로 걸리는 심장사상충은 모기 활동하는 봄, 여름, 가을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이 시기에 강아지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먹이는, 심장사상충약을 급여한다. 구조된 성냥팔이 개는 2년 간 야외에 방치되어 있었다. 또는 그전부터 일수도 있었다. 물도 제 때 주지 않으며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행태를 봐서는 심사상충 구제나, 그 외 감염병 예방 조치를 했을 리는 없다.


사상충 검사는 진단키트에 혈액을 몇 방울 떨어뜨려 판단한다. 한 줄이면 음성, 두 줄이면 양성. 결과는 두 줄. 아이는 사상충에 걸려 있었다. 그렇다면 그다음 촉각을 세우고 기다린 결과는 진행 정도. 제발 3기 이상만 아니길. 그러나 초음파 결과, 대략 3기를 넘긴 시점. 알을 까고 나온 벌레가 성충이 되어 심장 내 기생하고 있는 상태다.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3기 정도면 치료를 고려해 볼만하다. 주사와 약을 오래 써야 한다. 그 사이 아이의 절대 안정은 필수 생활지침이다. 운동, 놀이, 변화, 어떤 자극으로든 흥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치료 기간은 대략 2~3달 걸린다. 안정된 거주지에서 통원하며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다. 발견자이자 제보자가 아이를 두 달은 임보 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에게 잘 되었다. 임보자를 지원하는 구조자 측에서도 시간을 벌어 좋다. 아이가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하면서 평생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아이의 소식을 sns로 공유하며, 도울 시간을. 단기라도 임시보호를 제공한다고 하니 고맙다.


임보처가 정해지면 그다음은 이름이다. 어떤 이름이 이 아이를 새로운 운명으로 이끌까?

 



구조할 때 대상견 후원금도 같이 모금했다. 동물병원에서 기초검사를 받고, 혹시 드러나지 않은 병이 있다면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 마당에 쇠사슬로 묶인 채 꽝꽝 얼어버린 물그릇을 바라보던 아이의 텅 빈 눈동자를 사진으로 본 사람들이 후원금을 이체했다.


페키니즈구조대는 카카오뱅크 후원계좌를 공동관리하는 시스템으로 후원금 운영 투명성을 1차 지킨다. 2차는 후원금 입금내역과 지원금 출금내역을 sns에 주기적으로 공개한다. 오프라인에서 한 번도 만나적 없는 사람들.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완전한 타인 다섯 명이 후원계좌를 투명하게 지켜본다. 사단법인은 아니지만 누구 한 명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다.


나는 5인 중 한 명으로 후원계좌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었다. 아이 소식을 sns에 업로드했을 때부터 후원금 통장에 아이 앞으로 돈이 들어왔다. 입금자명이 흥미롭다. 정직한 후원자 이름 석 자, 같이 살고 있는 반려견 이름_뽀야네, 두부네, 또리네, 모모네, 하늘에서 엄지가,  쿵이네, 심쿵언니, 찐빵마미, 풀꼬망, 또미롱, 깝듀, 로지, 탄이, 메리, 연탄, 몽잭슨. 온갖 귀엽고 사랑 가득 담긴 이름이 후원계좌를 물들인다. 그리고 중간중간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입금자명이 눈에 들어온다.


'마당아가', '추운 아가', '아가야 따뜻한데 가자' '꼭 구조해 주세요'


구조하여 병원으로 이동하는 하루, 아직 이름이 없는 이 시간. 아이는 잠깐 '마당아가', '추운 아가'로 불렸다.


그리고 마침내, 임보자집으로 이동하면서 통상, 임보자님이 선물해 주는 이름이 정해졌다.

'봄날'

추운 겨울은 잊고, 따뜻한 인생의 봄날을 맞이했다는 의미로.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게 추운 겨울, 폐가 한편에서 표정을 잃고 스러져가던 성냥팔이 개는 2023년 누구보다 먼저 봄을 맞이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는 마음을 담아 아래 문장을 옮긴다.

"얘 눈 좀 봐. 이렇게 순한데. 보통 개하고 똑같아"

우리가 반려견과 식용견, 반려견과 들개, 품종견과 잡종견 등으로 나눌 뿐, 개는 다 똑같은 개이다.

<류커샹, 버려진 개들의 언덕, 책공장 더불어 '편집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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