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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15. 2023

세실앤 세드릭

문장소감 365 #day9, 공간 탐색

영감이 넘치는 공간에 다녀왔다.

프렌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신당동 가이닝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세실앤 세드릭(Cecil and Cedric).

봄, 처음 올라온 새싹을 연상시키는 연녹색 페인트로 칠해진 2층 건물의 문을 딸랑 열고 들어서자, 추위로 무장된 마음이 녹는다.



이곳에선 유러피안 감성의 선물하기 좋은 인테리어 소품을 취급한다. 생활공간을 자기만의 감성으로 채우고 싶은 사람이나, 이제 막 새로운 공간에서 나만의 추억을 쌓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집들이 선물 아이템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룸스프레이와 향초, 인센스는 감각적인 공간을 연출하는데 기본적인 것이 되었다. 공간에서 만들어질 사건들은 향으로 기억될 터.

자기만의 공간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향을 유명 럭셔리 퍼퓨머리가 아니라 나만 아는, 또는 특별한 소수의 취향을 담은 스토리가 있는 향으로 채우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적절한 아이템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어느 정원사의 가든 한 켠에서 자라고 있는 제라늄과 은방울꽃, 베티버와 히야신스가 품은 향을 구현한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시향해 보면서.



화학첨가물을 최소화했다는 유기농 비누와 룸스프레이 제품들은 제품에 담긴 친환경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만하다.


이곳에서 가공품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가이닝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플랜테리어에 적합한 식물들과 화분과 작은 삽, 갈퀴 같은 가드닝 소도구들도 판매를 하고 있다. 플랜테리어에 진심인 사람들은 식물과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재치 있게 매칭한 디스플레이를 본다면, 우리 집 가든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감이 올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공간은 공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 시대와 시대를 연결한다.


2023년 개인적인 미션, 매일매일 문장을 발견하고 소감을 나누기로 했는데, 여전히 띄엄띄엄 징검다리처럼 이어졌다, 멈췄다를 반복한다. 게으른 스스로를 반성하며, 가드닝 컨셉 인테리어 소품숍을 다녀온 김에 정원 가꾸기를 사랑한 문학인 그 작품들을 몇 찾아보았다.


정원에서는 모든 생명의 짧은 순환을 다른 어디에서보다 더 가까이에서, 더 명확하게,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중략>
작은 정원에서 즐거운 봄을 고대하며 콩과 양상추, 목서초, 다닥냉이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앞서 죽은 식물들의 잔해를 거름으로 주면서, 죽어간 것들을 돌이켜 생각하고 앞으로 피어날 식물들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해 본다.

-헤르만 헤세,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반니

헤르만 헤서는 정원에서 삶과 죽음의 무한 순환 루프를 발견했다. 젊은 나이에 문학적 성공을 거둔 헤르만 헤세는 가족과 함께 보덴호숫가에 집을 마련하여 목가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은 호수를 둘러싸고 풍경이 멋진 뜰이 딸린 저택이라서 그는 봄여름가을 내내 정원을 가꾸며 글을 썼다고.

(헤르만 헤세의 정원 가꾸기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보덴호숫가에서 삶은 7년 만에 끝이 났고, 이후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모든 것이 서서히 무너져, 정원도, 가족과도 헤어진 채 여러 해 동안 고독과 사색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


그리고 여기 뜻밖에 원예가가 있다. 영국 런던 근교의 시싱허스트 캐슬의 주인이자, 작가이며, 버지니아 울프의 연인으로 알려진 비타 색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가 그 주인공이다. 1892년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당대 영국의 사교계를 그린 다양한 장르의 글을 남긴 작가이며, 원예가로도 유명하다.


남성과 결혼했지만 동성을 사랑하고, 자신의 파트너들로부터 그 관계를 존중받았다고 하니 비타는 마성의 매력을 지닌 걸까. 성 정체성을 유동성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유명한 그녀는 존재의 다양성을 그녀의 정원에서 발견한 것은 아닐까.

후대들에게는 그녀의 문학보다는 시싱허스트 캐슬에 그녀가 가꾸어 놓은 영국식 정원이 더 유명한 듯도 하다. 런던 근교 여행지 추천으로 자주 오르내리니까.


<이미지 출처- 구글>


사진 중 마지막에 올린 것은 시싱허스트 안에 있는 비타의 서재를 재현에 놓은 것이다. 책상 위에는 책, 원고지와 함께 남편,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액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마지막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를 간호하며 어머니와 지낸 시간을 담은 다카야스 요시로 '어머니의 정원'이다.

기억이 허물어진 어머니의 꽃병은
계절을 그리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에 가슴은 내려앉고
나는 처음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메마른 후회로 흙빛 슬픔이 밀려옵니다
현관 입구에 선 내 두 발은
신을 구두를 언제까지나 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카야스 요시로, '꽃 병', 어머니의 정원에서, 북랩>


다시 한번, 헤르만 헤세 작품 속 하나의 깨우침을 떠올린다. 정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도 삶과 죽음의 무한루프 속에 있으며, 현재의 반짝임은 현재의 것임을. 지나간 것도, 미래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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