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손 없는 어느 날, 서울을 떠났습니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을 함께했던 도시를 뒤로하고
연고 없는 이 도시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차역 도보권.
소음이 심하지 않은 위치.
대단지 아파텔.
서울 전세 보증금의 60% 수준 주거비 절약
여유로운 주변 분위기
조건을 맞추다 보니
이사지는 비교적 빨리 정해졌습니다.
처음 며칠은 이사 후 처리해야 할 일들로 정신이 없었고,
정리가 조금 되고 나서야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기차 출퇴근이 시작된 겁니다.
기차 시간에 맞추다 보니
기상 시간은 서울에 살 때보다
30분쯤 앞당겨졌습니다.
생각보다 피곤했습니다.
아침의 5분은
늘 50분처럼 느껴지니까요.
처음에는 낮 동안의 피로도도 확실히 더했습니다.
기차 안에서 잠을 자볼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차역이 종착역이 아니라
자칫하면 내려야 할 순간을 놓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쪽잠은 포기했습니다.
대신 정기권에 일정 금액을 더하면
지정석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좌석이 있었고,
매일 앉아서 이동하는 건 가능했습니다.
38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건 곧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그날의 업무나 미팅을 미리 점검하기도 하고,
영어 단어를 외우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유튜브를 보며 머리를 식혔고,
사과 한 개를 먹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38분을 내 방식대로 채워 넣자
처음 느꼈던 불만과 막막함은
조금씩 다른 감정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는 기차는
이동수단이면서
하루의 리듬을 만드는 공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