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자 또 하나의 뜻밖의 복병을 만났습니다.
KTX를 타고 출퇴근하며 겪는 불편함은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었지만,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이렇게까지 버거울 줄은 몰랐습니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 플랫폼에 서 있으면
찬 공기가 몸을 에워싸고 지나갑니다.
바람은 단순히 춥다는 느낌을 넘어서
귓바퀴를 도려내는 듯한 칼날처럼 스쳐 갑니다.
목도리를 단단히 여미고, 귀를 감싸고, 몸을 웅크려보지만
기차를 기다리는 몇 분은 늘 체감상 훨씬 길게 늘어집니다.
KTX 통근을 결심할 때는
이동 시간, 피로도, 생활 리듬의 변화까지는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겨울 플랫폼에서 맞는 이 바람까지는
계산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뜻밖의 복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자세로 바람을 견딥니다.
주머니에 손을 깊이 찔러 넣은 사람,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며 추위를 외면하는 사람,
커피를 양손으로 감싸 쥔 사람.
그 사이에 서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출근을 해야 하나,
아니면 이 풍경 자체가 지금의 나를 설명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열차가 들어오고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제히 움직입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남아 있는 바람은
잠시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를 여전히 할퀴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며 생각합니다.
퇴사를 고민하게 만드는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순간들 인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