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수령 방식 확인]
회사에서 퇴직금 정산 안내 문자가 왔습니다. 법정 퇴직금과 희망퇴직 지원금을 어떤 방식으로 받을 것인지, 그리고 남은 후속 일정은 무엇인지 안내하는 짧은 메시지였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보며 ‘이제 뭐 하고 놀까’ 하는 철없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그 문자 한 통에 이른바 ‘퇴직자 현자타임’이 찾아왔습니다. 엄혹한 현실 앞에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손가락은 자꾸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모든 게 처음 겪는 일이라 서툴기만 한데,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바빠지고 있었습니다.
“퇴직금은 어떻게 할 거야? ”
현대 사회에서 돈은 인간의 생명줄과 같습니다. 퇴직자에게 퇴직금은 당장의 일용할 양식이자, 언젠가 그늘을 만들어줄 미래의 사과나무 묘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돈을 어디에 쓸지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지키고 불릴지부터 생각하게 되더군요.
법정 퇴직금은 개인 계좌로 바로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IRP라는 생소한 이름의 계좌를 먼저 만들어 그리로 받아야 하고, 쉰다섯 살까지는 세금 납부를 미룰 수 있다는 점도요. 그 안에서 채권이나 ETF 같은 상품을 운용하며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퇴직 지원금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회사가 건네는 마지막 배려이자 위로금 같은 이 돈은 개인 계좌로 직접 들어옵니다. 누군가는 이 돈으로 대출을 갚아 마음의 짐을 덜고, 누군가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전까지의 생활비로 쓰기도 합니다. 혹은 자신의 역량을 키우거나 자녀의 학자금으로 흘러가기도 하겠지요. 돈의 쓰임은 결국 각자의 삶이 짊어진 무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재테크에 아주 문외한은 아니라고 자부해 왔지만, 막상 퇴직금을 눈앞에 두니 모르는 것투성이였습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어도 정작 구체적인 그림은 없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일단은 이 막연한 숫동이들부터 차근차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직금을 둘러싼 금지사항”
해야 할 일만큼이나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명확해졌습니다. 퇴직 후 판단 착오로 고생했다는 이들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일종의 ‘퇴직자 행동강령’을 세워보았습니다.
누가 사업하자고 하면, 일단 웃으면서 넘길 것.
누가 대박 아이템이 있다고 접근하면, 그 사람이 왜 아직 대박이 아닌지부터 의심할 것.
누가 어렵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내 통장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조용히 반추할 것.
퇴직금을 받기도 전에 최악의 시나리오부터 써 내려가는 걸 보니, 저는 아무래도 ‘불안형 직장인’이었나 봅니다. 돌다리는 건너기보다 멀리서 사진만 찍고 돌아서는 편이 마음 편한 사람. 지금은 그 정도의 거리 두기가 제 영혼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선택처럼 느껴집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백이니 여유니 하며 신선 흉내를 냈는데, 현실은 그렇게 느긋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해결해야 할 숙제, 바로 ‘건강보험’이었습니다.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다음 날부터 저는 지역가입자로 전환됩니다. 선배들의 경험담을 이정표 삼아 공단에 확인해 보니, 다행히 제게 더 유리한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큰 숙제 하나를 끝낸 아이처럼 안도하며, 국민연금도 최소 금액이나마 중단 없이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반퇴’의 시기지만, 언젠가 마주할 진짜 은퇴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면서요.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저는 오래 그리고 가능하면 건강하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할 수 있는 준비를 성실히 해두는 편이 낫겠지요.
마지막으로 실업급여 신청까지 마치고 나니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워크넷에 이력서를 등록하고, 몇 년 전 써두었던 경력기술서를 현재의 시점으로 고쳐 썼습니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하루에도 몇 번씩 곱씹으며 문장을 다듬습니다.
이쯤 되니 퇴직 직후 느꼈던 찰나의 해방감, 그 뜨거웠던 ‘퇴직자 도파민’은 조용히 사그라듭니다. 대신 그 자리에 차갑지만 명료한 현실의 감각이 차오릅니다. 저는 이렇게 진짜 퇴직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