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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an 22. 2022

직딩일기_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상의 순간

직딩 일상 로그


지난 주도 재택근무를 이어갔다. 하루가 심플하고 고요하다. 근무는 8시 30분 시작. 근무 1시간 전에 일어나 55인치 TV모니터로 유튜브 동영상 중 '모닝 요가'편을 고른다. 약 20분 분량의 요가를 따라 하며 밤사이 뻣뻣해진 전신의 근골격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요가가 끝나면 세정제 없이 물세안만 하고 얼굴 보습을 위해 로션 한 두가지를 바른다. 이쯤되면 내가 일어나기 30분 전 부터 일어나 나의 동선대로 시선을 옮기며 아침밥을 기다리던 반려견이 컹컹 짖는다. 참을 만큼 았다는 소리. 시계를 힐끔 본다. 8시 20분. 느긋하지만, 늦지 않은 시간에 반려견 식사를 챙기면, 근무 시작 시간까지 5 남게 된다. 미지근한 물 한 컵과 함께 홈오피스 책상에 앉는다.



자, 하루 업무를 시작해 볼까.

원격근무시작 버튼을 누르면 드디어 하루 근무 시작. 회사마다 시스템 UIUX 다르겠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많은 기업들이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관리하기 위한 기술적, 인사적 시스템을 갖추었다. 초기에는 재택근무 중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침대가 가까이에 있어 도저히 일할 기분이 안 생긴다,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떼 쓴다, 택배가 수시로 온다, 강아지가 짖는다 업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요소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지금은 믿고 가는 분위기다. 그 사이 기업들이 업무 기반 일정 관리와 결과물 평가, 그리고 원격근무 시작과 끝, 중단 등을 시스템으로 보고하고 조율함으로써 근로 시간을 관리할 방법을 찾았기 때문.


근무 시작 후, 팀 챗팅방에 굿모닝 인사와 오늘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는 팀원들의 워크챗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확히 30분 뒤부터 팀장이 그 날 예정된 보고가 있거나, 보고를 해야 할 아젠다를 가지고 있는 팀원들을 챗방, 전화통화, 사내메신저, 이메일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호출하기 시작한다. 물론 급할 땐, 근무시간과 관계없는 상사의 호출이지만, 요즘처럼 새해 사업계획 및 전략보고가 마무리된 시즌이면 대부분의 업무 연락이 업무시간 내 이뤄진다.




이제는 재택근무에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지만 고용주가 고민하는 것과 다른 관점에서 근로자인 나도 재택근무가 불편했다. 내 경우엔 가족 구성원이라고는 나와 강아지 둘 뿐이라 신경쓸 집안 사람이나 일이 많지 않아 비교적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데 근무 초기에는 오래 앉아 있는 것이 힘들었다. 회사에서는 장시간 잘 앉아 있었는데 뭐가 문제인지 집에서는 한 시간이 지나면 골반, 허리, 어깨, 뒷목까지 툭치면 부러질 듯, 경직됐다. 알고 보니 의자 문제였다. 사무용 의자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동안 식탁용 의자에 의지하다가 사무용 위자를 하나 들인 뒤, 장시간 앉아 있어도 무리가 되지 않았다. 해서 번 돈을 모두 병원에 갖다 바치는 모순 끝에 그동안 지출한 병원비 정도의 가격을 주고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의자와 최대한 비슷한 것을 마련했고, 마침내 나의 척추와 평화 협정을 맺을 수 있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직딩들이 재택근무 중 호소하는 불편 중 하나는 점심식사다.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나, 식대는 주나, 그 날 그 날 메뉴는 또 어찌 고르나. 그것이 배달이 되었든, 집 근처 식당에 나가 식사를 하든, 직접 요리를 하든 말이다. 좋은 것과 불편한 것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인간의 뇌는 불편함과 부당함, 부정적인 것에 더욱 흥분하고 집착한다. 나 또한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이라 재택근무 중 식사의 장점다 아쉬운 점을 더 많이 생각한다.

 

먼저, 장점은  남눈치 안 보고 내가 먹고 싶을 걸 어느 정도의 시간 유동성을 가지고, 게걸스럽게든, 고상하게든 식사예절을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것. 반면 식사비 지출이 늘었다, 일시적인 재택근무 시행 중 식대를 지급한다는 새로운 복지를 만든 회사는 거의 없는 거 같다. 그거 얼마 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치솟는 물가와 도무지 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 직장인 급여의 반비례 곡선을 생각해 본다면, 엥겔지수가 이렇게 높아지는 것이 과히 즐겁지만은 않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는 것만큼 쓸한 일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식욕이 좋다.


그리고 쓰레기. 배달을 시키든, 장을 봐서 요리를 하든 필연처럼 일반쓰레기, 재활용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가지 종류의 쓰레기가 양산된다. 아, 하나 더! 생활오수. 사실  쓰레기 양산 문제가 재택근무 때문은 아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사무실에서 쓰레기를 먹고, 쓰레기를 싸는 것이 인간이니까. 다만 내가 집에서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많아진 건 확실하다. 내가 만든 쓰레기 내가 치우는 것이 정당한 이치겠지만 무로 녹초가 되어 마냥 쓰러져 쉬고 싶은 공간에서 엑스트라의 일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추가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프로 불편러에게 '그렇게 오만가지가 다 스트레스면 밥은 왜 먹고, 살기는 왜 사냐!' 세상의 현자, 엄마들은 일침을 가하지만. 심히 일한 자, 맛있게 먹을 권리와 잘 쉴 권리를 포기하지 말자.

   



드디어 본론, 그래서 오늘의 점심 메뉴는!

음식물 쓰레기도 줄이면서, 영양 보충도 하고, 어떤 잔인함도 담기지 않은 냉파용(냉장고파먹기, 냉장고 안에 든 음식 재료만으로 요리하기) 비건 점심 메뉴. 그것은 바로 콩나물버섯밥! 지금 나의 냉장고 안에는 비타민 C와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여 간해독작용에 탁월한 콩나물과 섬유소, 수분이 풍부하여 비만을 방지해주는 느타리버섯의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하다. 리고 냉동실에는 썰어 둔 대파와 청량고추가 꽝꽝 얼려 있다. 이 정도 식재료면 충분하다.


 

조리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이 들지 않아 네이버 검색하여 블로그 금손들의 조언을 참고했다.

1. 밥하기 : 콩나물과 느타리버섯을 잘 씻어 역시나 잘 씻은 쌀에 넣고 평소보다 밥물을 적게 넣는다.
     콩나물과 느타리버섯에서 채수가 베어 나오기 때문에 평소 쌀 양 대비 물을 넣는다면 밥이 질어질 수 있다.
2. 전기밥솥, 솥밥, 냄비밥 무엇이든 오케이!, 나는 쿠땡 전기밥솥 백미고화력 모드로 밥을 지었다.
3. 밥이 되는 동안(17~20분 소요) 양념장을 만든다. 양조간장 2큰 술에 참기름 1/2 큰 술, 다진대파(쪽파가 있으면 쪽파가 정석이다)와 청량고추를 약간 다져 넣는다.
     고춧가루 약간, 깨소금 약간, 매실청 같은 것이 있다면 약간. 본인의 기호대로 양념장을 만든다


양념장을 만들고, 반찬을 내 놓는 동안, 밥이 다 되었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 한 귀퉁이에 베이비 허브가 있었지. 약 3~4일 전에 녹색 채소, 식이섬유 섭취를 소홀한 것 같아 사 놓고, 챙겨 먹기를 소홀히 한 것이었다. 뭐든 그 때 반짝 의욕을 불태우다 금방 시들고 마는 이 놈의 성격은 생활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생각해 다행이다. 잘 된 콩나물밥 위에 얹는다. 콩나물버섯밥의 향기가 그윽하다.

  


회사에서 식사 하면 고기가 안 들어간  메뉴를 찾기 어려운데, 집에서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만 가지고 맛있는 비건  점심식사가 차려졌다.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 별 건가 싶다. 이렇게 잘 지어진 콩나물밥을 양념장에 쓱쓱 비벼 암~! 하고 먹는 순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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