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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Sep 10. 2022

복숭아에 어린 기억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달콤한 적이 있었느냐



복숭아가 글감으로 선택되자, 무의식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의 한 장면이 떠오르고 나는 일곱 살 무렵 여름으로 훌쩍 시간 여행을 떠났다. 유월 장마가 끝나자 무더위가 K 아이돌의 칼군무처럼 일사불란하게 진입하더니 내가 살던 작은 도시 곳곳을 순식간에 압도했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방금 지나간 아이가 도로 위에 철퍼덕 떨어뜨린 아이스크림 한 덩이는 끈적하게 녹아내리는 날이었다. 건물조차 반듯한 물성을 잃고 흐물거리는, 더위에 잠긴 그 도시의 거리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사람은 엄마와 나뿐이었다. 엄마는 ‘이제 막 돈을 벌었으니 갈 데가 있다’고 속삭인 뒤, 내 손을 잡고 더위를 헤치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즈음에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엄마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한 번도 직장생활을 해 보지 않은 엄마가 경제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갓 서른이 지난 나이에 자녀가 셋인 무경력 여성이 정규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조언을 구하던 중, 다행히 먼 친척이 어구(漁具) 제작 관련 일을 하고 있어, 자투리 시간에 할 수 있는 부업을 소개해 주었다. 그 일은 어망 제작으로 기억한다. 단순노동으로 옷감에 해당되는 초벌 어망을 특수 바늘로 꿰매 완성형 투망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시대의 효율성은 역시나 속도 대비 생산성이 관건이었다. 손이 빠르고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엄마는 남들보다 빠르게 많은 어망을 만들었다.

완제품이 일정 분량 쌓이면, 엄마는 그걸 중개상인 먼 친척에게 납품하고 비용을 치러 받았다. 그리고 가는 날이 장날인 것처럼 그 날은 시장에 들러 식료품이나 우리들 옷, 장난감 등을 사 오셨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마법을 부리듯 엄마는 흥정하고 쪼개어 꼭 필요한 것들 이외에도 우리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하나씩 사고 자기가 좋아하는 간식도 챙겼다.


그날 엄마는 처음으로 나를 데리고 거래처로 갔다.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엄마랑 단둘이 어딘가를 간다는 사실에 얼마나 설레고 기뻤던지, 가는 내내 나는 노래를 불렀고, 몇 번이나 ‘버스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주의를 들어야 했다. 엄마가 조용히 하라고 할 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마 못 가 다시 흥얼거렸다. 그만큼 기뻤다.

먼 친척 어른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신중하게 지폐 몇 장을 새어 엄마 손에 올렸다. 엄마는 지폐의 개수에 실망하는 듯했지만 이내 체념한 듯 재빠르게 지갑 안에 그것을 반으로 접어 넣었다. 자 이제 가자.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돌아서려 할 때,

“잠깐, 너 몇 살이라고 했지?”

먼 친척 어른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일곱 살이요. 내년엔 학교 가요.”

나는 평소 엄마가 가르친 것처럼 또렷한 목소리로 내 나이를 일러주었고, 자랑처럼 내년엔 학교에 간다는 묻지도 않은 얘기를 조잘거렸다.

“쬐그만 게 똘똘하네. 학교 갈 때 이걸로 가방 사라……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어른은 지폐 몇 장을 내 손에 쥐어 줬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엄마가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좋은 긴장감이었다. 나는 엄마 얼굴을 한 번 보고 내가 그 돈을 받아도 된다는 신호를 읽었다. 수줍게 돈을 받아 든 뒤, 이마가 무릎에 닿도록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꼭 가방 살게요.”

그렇게 받은 돈은 엄마에게 주었다. 이번엔 엄마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몇 곡의 노래를 반복하고 난 뒤, 마침내 그 날의 진짜 목적지에 도달했다. 정아청과.                    

“복숭아를 좀 사 볼까.”


엄마는 빠르게 물 좋은 복숭아를 눈으로 골라냈다. 나도 엄마를 따라   뒷짐을 지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과일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다들 같은 모양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솜털이 송송 박힌 핑크빛 과일들이 크기도 제각각, 빛깔도   제각각, 거기에 솜털 없는 천도까지. 벌써 입에 침이   고였다. 가만히 보니 계단처럼 단이 만들어져 있는 진열대 중 왼쪽 위에 있는 복숭아가 제일 크고   빛깔도 좋았다. 엄마가 저걸 골랐으면 좋겠는데. 그때였다.


“뭘 골라요. 늘 가져가던 거 가져가지.”


사장인 듯한 중년의 남자가 퉁명스럽게 진열 단 아래 바닥에   웬 나무 궤짝을 발로 툭 차며 말했다. 자연히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아 과일이 여기도 있네. 지금은 레트로 감성으로 고급 과일을   담는 패키지로 활용될 법한 나무 상자에도 과일이 담겨 있었다. 못난이들이었다. 낙과나 너무 익어 과육이 터져버린,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하품(下品)들이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조악한 플라스틱 바구니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절반쯤 썩어버린 것도 있었다. 그리고 더욱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과일가게 사장이 발로 찬 상자를 힐끔 보고 딴청을 피우는 사이, 가게   안쪽에서 걸어 나온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방금 남자가 한 것과 똑같이 과일 상자를 발로 차는 것이 아닌가.


“이거나 가져가.”


영글지 않은 언어와 감정에도 나는 표현할 길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이거나? 퉁명스럽고 심드렁하게 과일 상자를 발로 차던 어른과 아이. 상자가   아니라 내가 차인 것 같은 기분이었을까. 큰소리로 한 마디 뭐라 쏘아 주고 싶은데, 낯선 공간,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과 분위기에 어린 나는 주눅이   들었다. 그래도 가만히 넘어갈 순 없어,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작고 소심한 목소리로 겨우 중얼거렸다.


“먹는 거, 발로 차는 거 아닌데.” 그 말이 옆에 서 있던 엄마 귀에는 들렸나 보다.

“안 사면 그만이지. 얘 가자. 다른 집 가자.”




이전에 엄마는 몇 번 그 과일 가게에서 바닥에 놓인 과일들을 사 온 모양이다.   한정된 수입으로 요령껏 솜씨를 발휘해 절약해 온 노하우 중 하나였을 것이다. 평소 과일   가게 사장은 그런 엄마가 성가셨을 것이다. 그날도 그는 ‘돈   안되는 손님이 또 왔구나, 대충 재고떨이나 해야겠다.’ 무시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고.


나의 첫 복숭아 구입기는 당혹감과 낭패감으로 물들 뻔했지만, 자존심이   상했던 엄마는 바로 정아청과 옆가게로 가, 환대 속에서 호기롭게 특상품 복숭아를 구입했고, 나와 동생에게 달고 향긋한 천상의 맛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이래서   복숭아를 선계의 과일이라고 하나 봐. 올 여름엔 복숭아를 하나 맛있게 먹은 뒤, 그 때 과일가게 사장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전해 본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를 오마주하며.


“못난 복숭아라고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달콤한 적이 었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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