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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리 Aug 14. 2023

알잘딱깔센

 혹시 '알잘딱깔센'이라는 단어를 아는가? 신조어인데, '알아서 잘하고 딱 깔끔하게 센스 있게'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 업무에 대입해 보자면 구구절절, 일일이 설명 안 해도 알아서 상황에 맞게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업무를 하다 보면 이런 능력이 상당히 필요하다. 업무 지침서에 나와있지 않고 규정에도 없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필요하다면 그냥 알아서 센스 있게 행동하는 것 말이다. 특히나 고객을 응대하며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는 직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그게 고객의 안위와도 직결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띵동"

 "고객님 안녕하세요."

 중년의 부부가 내 앞에 앉았다. 고객을 많이 응대하다 보면 둘이 같이 오는 고객들이 서로 어떤 사이인지 감이 온다. 그 둘은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남편과 남편의 자금을 관리하는 아내로 보였다. 여성 고객님이 얘기했다.

 "이 사람 이름으로 예금 하나 들어주씨요."

 역시 주권은 여자다. 이번에도 남편은 싸인만 하러 왔구나 싶었다. 남편 명의 예금을 결정하는 건 남편이 아닌 아내였다.

 "여보 얼마 할래?"

 남편에게 얼마 예금할지를 묻는 여성 고객님.

 "글쎄? 한 이천 할까?"

 "뭔 소리여 시방. 어차피 쓸 데도 없잖여. 삼천 해. 없어? 삼천?"

 역시. 여성 고객님이 예금할 금액 남편에게 물어봤지만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돈 부족할걸? 그냥 이천만 하지 뭐."

 작아지는 남편의 목소리. 내가 남자 고객님께 물었다.

 "고객님, 아내분이신가요?"

 "네네. 원래 내 거 다 관리해요."

 "그래도 예금주는 고객님이시니까, 고객님 의사를 제가 분명히 확인해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더 하시긴 어렵고 이천만 원만 예금하고 싶으시다는 거죠?"

 "더 하고 싶어도 돈이 부족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이천만 원은 그럼 고객님 입출금 통장에서 바로 출금하면 될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남성 고객님과 대화하는 동안 여성 고객님은 계속 옆에 서 계셨다.

 "출금할 통장을 따로 가져오시거나 계좌번호를 아시는 건 아니시죠?"

 출금할 계좌번호를 모른다는 고객님의 대답에 동의서를 받고 이천만 원을 출금하기 위한 입출금 통장을 조회했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고객님의 입출금 통장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에는 이천만 원 조금 넘는 돈이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천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있었던 것이다. 분명 삼천만 원이 안 된다고 하셨는데, 통장에는 두 계좌 합해서 삼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있었다. 고객님께서 금액을 착각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고객님, 지금 확인해 봤는데요. 고객님 통장에 총 삼천만 원 넘는 금액이 있습니다. 삼천만 원 예치하실 수 있어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여성 고객님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이야 여보 돈 많네?! 있다잖아~ 없다매!"

 "그럴 리가 없는데? 저 계좌 하나 있지 않아요? 거기에 삼천만 원이나 있어요?"

 "아니요, 입출금 계좌가 두 개 있는데요, 하나에는 이천만 원이 있고 나머지 계좌에 천만 원 넘게 있습니다."

 여성 고객님이 이야기했다.

 "맞네, 생각해 보니까 이 사람 계좌 하나밖에 안 쓰요. 계좌가 하나 더 있다고? 뭐지? 나 몰래 뭐 있어? 바른대로 말해."

 "나 진짜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제가 그런 통장이 있다고요?"

 "네, 고객님. 최근에도 입출금 거래가 있던 계좌입니다."

 "계좌가 진짜 하나 더 있나요? 제가 어떤 건지 잘 기억이 안 나서..."

 "네. 두 개의 계좌가 있으시고요. 합하면 삼천만 원 예치 가능하십니다."

 "좋네! 삼천 해! 나 물 좀 마시고 올게."

 여성 고객님이 정수기로 물을 마시러 가셨다. 순간. 남성 고객님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금세 싸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그렇게 눈치가 없어요?"

 나는 목소리에서 살기가 느껴진다는 표현을 그때 처음 느꼈다. 정면을 보지 않고 모니터를 보고 있었음에도 얼굴 옆쪽으로 차디찬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를 바라보니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증오와 적개심이 마스크를 뚫고 뿜어져 나오고 있다. 섬뜩함이라는 느낌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눈으로 욕한다는 표현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렇다. 비자금이었다. 남성 고객님의 비자금!!! 정말 '아차'싶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 돈의 정체를 알고 나자 뒤늦게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어떻게 그렇게 큰돈의 존재를 모를 수 있었는지. 최근까지도 거래를 했던 통장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지. 몰랐던 게 아니라 모른 척했던 것이었다.

 "비자금 안 만들어봤어요? 딱 보면 몰라요? 비자금인 거? 내가 이거 얼마나 공들여 모은 건데. 하, 미치겠네 정말. 천만 원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나는 그 비자금이 있어도 없는 것. 알아도 모르는 것으로 행동했어야 했다. 너무 죄송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미처 그 생각까지는 못했습니다. 어떡하죠?"

 "몰라요. 이제 집에 가면 끝이야 나는...... 아후! 딱 보면 몰라요? 결혼 안 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일뿐이었다. 잠시 후 여성 고객님께서 물을 마시고 돌아오셨다.

 "뭐여 삼천 했어? 비자금 맞지 그거? 뭐 내가 달라고도 안 하는데 뭘 그걸 숨기고 그르냐 남자가!"

 "아니, 나는 우리 나중에 급한 일 있을 때 쓰려고 했던 거지."

 그렇게 두 분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가셨다. 달아오른 내 얼굴은 한동안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말은 모른다. 해피엔딩으로 끝났는지 남편 분이 집에서 쥐어터졌는지.

알잘딱깔센.

그래.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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