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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대리 Aug 17. 2023

운칠기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랬겠지만, 나에게도 취업준비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젊은 시절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취업준비에 몰두했다. 대략 100여 개의 이력서를 작성해서 기업에 지원서를 냈탈락이라는 쓴 맛을 봤다. 그렇게 단 시간에 다수의 실패 경험을 해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되었고 '내가 이렇게까지 무능한 사람이었나'하는 자괴감도 수 없이 들었다. 매일밤 앞이 보이지 않는 이 막막한 삶이 언제쯤 끝날지, 끝이 나기는 하는 것인지 한숨을 쉬면서 잠이 들었고,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며 잠든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예민해진 탓인지 부모님과의 갈등도 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 처박혀 살다 보니 하루에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적도 많았다. 나보다 일찍 취업에 성공했거나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을 SNS에서 볼 때면 내 현실이 너무 한심스러워 SNS도 끊었으며, 남들의 성공을 축복해주지 못하는 옹졸한 내 자신도 싫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다. 그렇게 취업준비를 해서 그런지 주위에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마음이 쓰인다. 얼마나 힘든 시간은 보내고 있을지 잘 아니까 말이다. 사실 본인의 알은 누가 대신 밖에서 깨줄 수 있는 게 아니고, 오롯이 본인이 본인의 힘으로 깨고 나와야 함알지만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띵동~!"

 "고객님, 이쪽으로 오세요."

 젊은 남성분이 앉았다. 20대로 보이는 남성 고객님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만 응대하다가 젊은 고객님을 보니 신기했다. 나와 비슷한 동년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가 순간 내 나이를 깨닫고 아차 싶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마음만은 20대'가 벌써 내게도 적용되나 보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저 통장을 만들려고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어떤 목적으로 통장을 개설하려고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요즘은 통장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경우 해당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쓰일 소지가 많고 그렇게 되면 이는 범죄에 연루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통장을 개설할 때 은행에서 고객에게 뚜렷한 개설 목적을 요구한다.

 "돈을 받아야 하는데 계좌가 없어서요."

 "아~ 급여 통장 만드시는 거예요?"

 젊은 고객이 돈을 받아야 한다기에 인근 회사에 취직한 사회초년생일 것이라 생각했다.

 "음... 급여를 받는 것은 아니고요..."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고객님. 요즘 돈벌이가 없는 취업준비생들을 상대로 그들로부터 통장을 구매해 대포통장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들었다. 고객님이 대답을 명확히 해주시지 않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고객님, 요즘은 대포통장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아 통장개설이 쉽지 않습니다. 급여가 아니면 무슨 돈을 받으셔야 한다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급여가 아니라면 단순히 한 번 돈을 받기 위해 통장을 만든다는 것인가? 대체 무슨 돈인 것일까? 정당한 돈이 맞다면 왜 머뭇거리는 거지? 누가  만들어오라고 시킨 것일까?'

 머뭇거리는 고객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별의별 생각들이 오갔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잘못된 길과 연루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통장 개설을 만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저...... 취직해서 급여받는 것은 아니고요. 체험형 인턴을 이번에 하게 됐는데 거기서 수당 같은 것을 준다고 통장을 만들어 오라고 해서요."

 '아 체험형 인턴!'

 다행이었다. 그런 이유라면야 얼마든지 만들어드릴 수 있다. 한순간에 고객님을 의심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 그럼 가능하십니다. 축하드립니다! 일하시는 거네요 이제!"

 "네, 맞아요. 체험형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해보려고요."

 "아니 근데 뽑을 거면 채용 연계형을 뽑아야지, 왜 체험형을 뽑는대요? 무슨 희망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그니까요. 그래도 취업준비생들한테는 이거라도 감사하죠."

 "맞아요. 사실 취업 준비하다 보면 지치고 힘든데 이렇게라도 조금씩 일할 경험이 생기면 좀 낫기는 하죠. 취업준비하는 거 많이 힘드시죠?"

 "네. 그만하고 싶어요. 이런 체험형 인턴을 하는 것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는 거거든요. 혹시나 채용과 연계될까 해서요."

 마음이 아팠다. 본인도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혹시나", "만에 하나"하는 마음으로 체험형 인턴을 지원해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있었으니 그 절박한 심정이 이해됐고 또 그래서 안쓰러웠다.

 업무를 다 끝내고 고객님께 음료수 한 병을 건네며 말했다.

"업무 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주제넘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신 만큼 꼭 취업에 성공하실 거라 믿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내가 원하는 회사는 날 안 원하고,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회사가 날 원하는 경우도 때로는 있더라고요. 어떤 방식으로든 열심히 하시니까 좋은 결과 있으실 테니 파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일을 다 보고 뒤돌아 나가는 고객님의 뒷모습에서, 20대 취업준비생 시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터벅터벅 걷던 나의 모습을 보았다. 다음에 그 고객님이 다시 방문했을 때는 꼭 직장인의 신분으로, 아니면 사장님의 신분으로!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음 번호를 눌렀다.


 예전에 취업준비생들을 위한 면접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종종 내가 하던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어느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수년간 과거 시험에 응시했고 또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신보다 덜 공부한 주위 사람들도 합격을 하는데 본인은 계속 낙방을 하는 것이었다. 억울하게 여긴 선비가 이를 옥황상제에게 따졌다. 이에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러 술내기를 시켰는데, 안타깝게도 정의의 신은 석 잔을, 운명의 신은 일곱 잔을 마셨다. 옥황상제는 이를 보고 세상의 이치가 칠 할은 운이고 삼 할은 노력이니 노력과 결과가 정비례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운칠기삼'이다.


 그렇다. 내가 누군가보다 많은 스펙을 쌓았고 능력도 더 낫다고 생각되는데 그 사람은 소위 '잘 나가고' 나는 일이 잘 안 풀리는 경우가 있다. 또, 정말 오랫동안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했는데도 그 목표를 수년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탓을 할 필요는 없다. 내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망할 필요도 없다. 운칠기삼이기 때문이다. 운이 칠 할이나 되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정말 최선을 다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할 수 있다. 열심히 했다면 이번에는 운이 내 편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자.

 취업준비를 하다 보면 "귀하와 함께 할 수 없어서 아쉽다"는 화만 돋우는 예의상 멘트에 셀 수 없이 많이 뚜껑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잦은 실패에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져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다. 그래도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고개 숙이지 않았으면 한다. 속상해하지도 말자. 내 탓이 아니다. 불합격 통지를 받은 취업준비생들이 못난 게 아니라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니까.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운명의 신이 나의 편에 서주는 때를 대비해 내가 할 수 있는 삼 할의 노력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혹시 아나? 내가 도전하는 때에는 정의의 신이 술 한 잔 더 마셔줄지.

 지금도 도서관에서 열과 성을 다하고 있을 취업준비생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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