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생각 #54
문은 출입을 위해 존재하지만 닫혀 있을 때는 사실, 벽에 가까운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출입이 적은 문은 벽으로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 될 터, 문보다는 벽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아마 이 생각을 마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루 중 단 한 번이라도 그것이 문으로써 기능한다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비상 상황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비상구가 쓸모없다거나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나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어떤 상황을 예비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도 마찬가지다. 열리고 닫히지 않아도 문이 문일 수 있는 이유는 열리고 닫힐 상황을 예비하고 또 그 상황이 닥치면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이 만약 자기가 없으면 아무도 출입할 수 없다며 매일 자기 멋대로 열리고 닫히고 으스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집은 얼마 안 가 도둑 침입, 온기 손실 등 온갖 부정적 요소들에 노출될 것이다. 즉, 문이 문으로써 제 가치를 온전히 증명하기 위해서는 항상 열리고 닫힐 것이 아니라 평소에는 묵묵히 벽의 역할을 하다가도 출입이 있을 때만 문으로써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집단에 속해 있을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평소에는 벽처럼 묵묵하게 집단의 든든한 울타리로써 기능하다가도 내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가 되면 제 기능을 십분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내가 그 집단에서 중요한 사람인 이유는 어쩌면 하루에 한 번, 길면 한 달에 한 번. 필요한 순간에 확실하게 제 역할을 수행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주 열리고 닫히지 않아도 문이 '문'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