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불여일견'의 시대는 끝났다
요즘 세상 정말 좋아졌다. 궁금하거나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검색만 해보면 되니까 말이다. 혹자는 현대인들이 평균적으로 누리고 있는 문화적 혜택 수준이 중세시대 귀족보다 훨씬 낫다고 하던데 이렇게 어떤 정보나 콘텐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면 그 말이 참 와닿는다.
이렇게 정보 접근성이 좋아지니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넓은 범주의 정보나 지식을 접할 수 있게 됐고 과거에 비해서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서,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낼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이렇게 정보 간의 폐쇄성이 옅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부작용은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쉽게 아는 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여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누구나 백 번 이상의 것을 휴대폰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세상이 됐으니 마치 자신이 모든 일의 진상을 다 아는 것처럼 자신 있게 말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런 부작용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이었는데 어느 날 희귀병에 걸려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친구와 하루를 같이 보내면서 아는 것과 겪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를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날 나는 친구의 휠체어를 하루종일 끌어주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가 미흡하다고 느껴져서 분노가 치미는 순간이 자주 발생했다.
예컨대 차도에서 인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마련된 경사로에 불법주차된 차들을 마주했을 때, 그런 경사로조차 마련되지 않은 길을 마주했을 때, 휠체어로 건너기엔 너무 짧은 교통신호를 마주했을 때,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너무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 등.
사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내가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서 수차례 접했던 내용들이었고 내가 종종 챙겨보는 장애인 유튜버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신랄하게 흡수했던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관련 내용에 대해서 얘기할 기회가 있을 때 내 나름의 근거와 주장을 자신 있게 펼치기도 했었다. 그 사실에 대해서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직접 겪어보니 내가 알고 있던 게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 있게 아는 척을 했던 날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현실의 정보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화면에서 마주했던 정보들보다 훨씬 냉혹했다.
아무튼 나는 그날 이후로 직접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진정으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간할 줄 알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지혜라고 하던데 어쩌면 나는 그 친구와의 하루를 통해 지혜를 아주 조금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니라 백견이 불여일'경'(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것이 낫다)의 시대가 아닐까? 무엇이든 볼 수 있다 하여 아는 척하지 말고 직접 경험해 봄으로써 진정으로 앎에 도달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