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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센느 Dec 21. 2017

'내 것'의 힘

당신은 단 한번이라도 무언가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입니까?



넌 박살낼 줄만 알지, 무언가를 만들어낼 줄 모르잖아.


영화 <싱 스트리트>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던 불량 학생에게 던진 말이다. 늘 괴롭힘 당하던 주인공이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얻고 그 끝에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학생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된 현실을 함축하고 있는 이 대사는, 영화를 본지 1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이따금 떠오른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것이기에 박살내는 힘을 두려워하지 않게 했던 것일까?


나는 마케팅이 직업인지라 일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대개 그것은 콘텐츠의 형태로 완성되고 유통되는데 종종 드는 생각은 무엇이든지 만드는데 드는 노력은 소비하는데 드는 노력보다 수 배 이상 들어간다는 것이다. 가령, 페이스북 콘텐츠를 하나 만드는데도 경우에 따라서는 기획자, 디자이너가 하루 이상 달라붙어 완성할 정도로 공을 들일 때가 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페이스북 유저 입장에서는 길어야 20초 내외로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어떤 때는 0.3초도 시선을 못 끄는 콘텐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큰 반응을 얻지 못했을 때는 좌절감이 배가 된다.


페이스북으로 예를 한정지었지만 사실 어느 매체에서든 이러한 현상은 유사하게 나타난다. 보통 책 한 권을 읽는데 일주일에서 한 달 이상의 긴 시간이 든다고 하지만 그 책을 쓴 저자는 책을 완성하는데 1년 이상이 걸렸다는 사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물론 시간이 '고생'을 대변해주는 절대적, 정량적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건 그만큼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 쉽지 않은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너의 그 말은 빅커스의 저서 '에식스 카운티의 작업' 98페이지를 인용한 거지, 안 그래? 나도 읽어봤어. 계속 도용할 생각이었나? 이 문제에 대한 네 견해는 없는 거야? 아니면 혹시, 술집에만 오면 희귀한 책만 골라서 자기 것처럼 떠들며 여자들 앞에서 잘난척하고 내 친구를 망신 주는 게 취미인가?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이 잘난척하는 명문대생에게 하는 말이다. 이 대사 중에서 내가 주요하게 봤던 부분은 '내 것'과 '남의 것'의 차이를 얘기하는 대목이었다. 평생 남의 것을 소비만 하는 사람은 진정한 나의 얘기를 할 수 없다. 남의 것을 소비했다면 적어도 그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해서 새로운 콘텐츠로 만들어보기라도 해야 진정한 내 얘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만드는 사람들은 그 결과물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었든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졌다는 점이 유의미한 성과가 된다.

 

유명 지식인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얘기하는 것을 자세히 보면 그 사람이 '내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인지 '남의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전자인 사람들은 "제가 예전에 쓴 책에서는 이렇게 얘기했어요."라든지 "제가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데"와 같이 많은 얘기를 나의 것에서 인용한다. 하지만 후자인 사람들은 현상에 대한 단순 암기식 나열, 혹은 그 현상에 대한 유명인의 해석 등을 인용하기 바쁘다. 물론 후자의 경우도 일반인이 보기엔 대단하고, 전문적이고, 훌륭해보이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는 전자의 경우가 전세대적으로 롱런하는 경우가 많다.


정리하자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드는 사람들에겐 어떤 동기가 있고 그 동기는 바로 내 것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콘텐츠의 향연, 뉴욕 브로드웨이


현대인들은 평소에 수많은 콘텐츠를 접하고, 소비하며 살아간다. 광고 콘텐츠만 해도 일반인이 하루에 접하는 게 평균 1,000개(4대 매체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광고)가 넘는다고하니 그 외의 것들까지 더한다면 그 양은 엄청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루가 아닌 전 생애로 확장된다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그 중에서 내 이름 석자를 당당하게 내걸고 온전히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게 과연 몇 개나 되는지.


누군가가 인터넷 문화를 1% Rule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웹사이트 이용자 중 1%만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9%가 그 콘텐츠를 편집, 나머지 90%는 수동적으로 콘텐츠를 소비만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다들 잘 알다시피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땐 책을 출판하거나 음반을 만드는 것처럼 돈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터넷 이전의 시대와 다를 바 없이 만드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현재 1%, 9%, 90% 중에서 어느 그룹에 속하고 있는 걸까?


단순히 내 것에 대한 갈망이 없기 때문이라면 혹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라면 한번쯤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만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매체가 수두룩한 요즘 시대에, 그 수많은 콘텐츠들 중에서  '내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또 많은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싱 스트리트>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던 불량 학생은 결국 주인공의 음악 밴드에서 경호원 역할을 자처하며 그들과 함께하게 된다. 창조력이 파괴력을 압도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결국 무언가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파괴도, 소비도 없다. 그 모든 것이 창조를 전제함으로써 존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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