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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센느 Dec 24. 2018

호캉스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Vol 1. 스탠포드호텔 서울

'호캉스'라는 말이 아직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기였다. 내가 스탠포드호텔의 리셉션을 어설프게 서성였던 2015년도는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월요일에 연차 쓰고 어딜 가냐고 묻는 동료들의 물음에 혼자서 호텔에 간다고 했더니 다들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대체 혼자 거길 왜 가요?"


그 즈음에 나는 인턴에서 정직원으로 전환이 됐었다. 자연스럽게 그 모멘텀을 어떻게 기념할지 고민했었고 그 끝에 나홀로 호캉스를 기획했다. 왜 호텔이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지만 그냥 막연하게 호텔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제법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PM 02:00

일요일 대낮의 상암동은 매우 한산했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호텔이 있는 상암동에 도착했다. 일요일 대낮의 상암동은 매우 한산했다. 체크인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시간을 죽이기 위해 호텔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PM 02:10

책과 와인을 가방에 꾸역꾸역 넣어갔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앞서 고백했듯이 이날의 호캉스가 내 생애 첫 도전이었다. 그래서 호텔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에 대한 막연함이 있었는데, 무엇이든 해보려는 소산으로 책과 와인을 가방에 꾸역꾸역 넣어갔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만약 당신이 홀로 호캉스를 떠나게 된다면 꼭 책과 와인을 챙기길 바란다. 이 정도의 콘텐츠도 구비하지 않고 호텔로 홀로 떠나는 일은 어쩌면 무인도에 스스로 갇히는 것보다 고독한 일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PM 03:30

드디어 방에 입성했다.


드디어 방에 입성했다. 룸 컨디션이 좋은 편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당시에 나는 호캉스 초심자였기 때문에 달리 기준점이 없었다. 


사실 모든 일이 그렇다. 경험의 누적이 기준과 취향을 만든다. 이때와 달리 전국 수십 곳의 호텔을 방문한 현재의 나는 호텔에 대한 기준과 취향이 생겼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호텔을 추천할 수 있는 약간의 안목도 생겼다.


어쨌든 당시의 내 감정은 '설렘'에 가장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우선 여장을 풀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PM 05:30  

호텔 침대에 누워서 보는 TV는 집에서 보는 것과 명백히 다르다.


침대에 누우니 일어나기가 싫었다. 누워서 TV나 볼 거면 뭐 하러 호텔에 가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호텔 침대에 누워서 보는 TV는 집에서 보는 것과 명백히 다르다. 요즘 호캉스가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서 김영하 작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호텔에는 일상의 근심이 없어요. 집에서는 가만히 있다가도 세탁기만 보면 '저걸 돌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가지 근심이 있는 거죠. 어떤 작가의 에세이에서 본 건데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어요. 그래서 호텔은 일상의 상처와 기억을 피하기 위해서 좋은 공간인 거죠.

tvN <알쓸신잡 3> 中, 김영하 작가의 말


그렇다. 일상의 상처와 기억이 없는 공간에서 오롯이 TV에만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 분명 그것은 '일상적이지 않은 TV 보기'다. 물론 당시에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TV 시청을 즐겼던 것은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그런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PM 07:00

허기를 달래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MBC 사옥이 있어 구경도 하고 먹을거리도 찾을 겸 그 주변으로 향했다. 호캉스를 떠날 땐 호텔 주변의 관광지, 맛집, 볼거리 등을 함께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하루를 보낼 호텔이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호텔이라면 굳이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딱히 즐길 거리가 없는 곳이라면 그 공백을 채워줄 콘텐츠를 호텔 주변에서 찾아야 한다.



PM 09:30

'호텔방에서 홀로 마시는 와인'이라니 텍스트만 놓고 보면 꽤 근사한 밤이었다.


호캉스 첫날밤, 드디어 와인을 오픈했다. '호텔방에서 홀로 마시는 와인'이라니 텍스트만 놓고 보면 꽤 근사한 밤이었다. 당시에 와인과 호텔이 나에게 주는 상징성은 일상적인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다. 그것은 성년의 날에 장미나 향수를 선물로 받는 것과 유사한 메타포를 지녔었다. 


돌이켜보면 그땐 '정직원'이라는 타이틀이 나에게 그만큼이나 큰 의미였던 것 같다. 20살이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철부지가 어른이 되지 않듯, 정직원이 되었다고 사회 초년생이 어엿한 사회인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어른 혹은 사회인 행세를 하고 싶었나 보다.


어쨌든, 그렇게 호캉스 첫날밤은 잘 마무리되었고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나는 호캉스를 꾸준히 즐기게 되었다. 일상의 상처와 기억이 없는 새로운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분기별로 호캉스를 통해 일상의  관성을 허물고 새로운 삶의 동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제는 내 삶에서 꽤나 중요한 이벤트가 되었다.




스테이, 스토리가 되다.
staystory


스테이스토리는 호텔, 펜션 등 일상적이지 않은 새로운 공간에서의 하루를 공간에 대한 리뷰보다 '하루에 대한 스토리'로 풀어내는 Stay Magazine입니다.


사진 · 글 = 강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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