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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센느 Dec 30. 2018

호텔에서 연말 그럴싸하게 보내기

Vol 2. 설악 켄싱턴 스타 호텔

늘 그랬듯 눈 깜짝하니 또 연말이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딱 하루 차이인데, 그 하루로 많은 것이 바뀐다는 게 가끔은 불합리하다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주기적으로 이런 구획을 지어서 한 해를 돌아보고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1년 365일이라는 건 꽤나 인간의 삶에 이롭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나는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또 특별한 호텔을 찾아 떠났다.



이번에 방문한 설악 켄싱턴 스타 호텔은 이름 그대로 설악산에 위치한 켄싱턴호텔이다. 수도권과 이어지는 교통 편이 과거에 비해 꽤나 편리해졌기 때문에 강원도는 제주도만큼 인기 있는 여행지로 최근 몇 년 새 급부상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퀄리티 좋은 호텔도 많이 생겼는데 대부분이 강릉, 속초, 양양 등 해안가를 중심으로 멋진 오션뷰를 가진 호텔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바닷가 주변에 살았던 나에게는 오션뷰가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다. 오히려 오션뷰보단 마운틴뷰, 마운틴뷰보다 시티뷰가 마음을 동하게 하는 편이고 그런 탓에 이번 강원도 여행의 숙소로는 설악산의 뷰가 담긴 설악 켄싱턴 스타 호텔을 선택하게 됐다.




PM 04:00

서울에서 3시간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3시간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오랜 세월 수많은 투숙객을 접객해오며 특2급을 거쳐 특1급으로 승격한 호텔답게 컨시어지의 숙련도는 꽤나 안정적이었다. 호텔에 아동을 동반한 가족 고객이 많아서인지 컨시어지가 루돌프 머리띠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디테일이 마음에 들었다.



이 호텔은 어느 룸에 묵든 산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설악산을 보느냐 호텔의 뒷산을 보느냐의 차이가 있는데 나는 아쉽게도 뒷산을 보는 룸에 배정됐다. 하지만 그 뷰도 충분히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서 나름 만족도가 높았다.



룸 컨디션은 5성급치곤 좋지 않은 편이다. 역사가 오래된 호텔이기 때문에 침구나 가구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청결도는 좋음).



욕실의 수전이 이 호텔의 오래된 역사를 잘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냉수와 온수 레버가 따로 있어서 적절한 온도를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이 호텔이 수전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다.


몇 년 전 로마 여행 중 가이드가 이런 말을 했었다.


여기선 100년 된 건물은 명함도 못 내밀어요. 대부분이 몇 백 년 이상 된 건물이기 때문이죠. 아마 여러분이 숙소에 묵으실 때 오랜 연식의 건물 탓에 불편함을 느끼셨을 텐데요. 로마인들은 이처럼 오랜 역사가 담긴 건물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편리성의 잣대로 존재 가치를 매긴다면 10년 이상 존재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10년 뒤에 내가 이 호텔을 방문했을 때도 이 불편한 수전만큼은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PM 05:00

영국 왕실풍의 앤틱한 분위기가 모든 시설을 관통한다.


방에 여장을 풀고 호텔 구경에 나섰다. 5성급 호텔답게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영국 왕실풍의 앤틱한 분위기가 모든 시설을 관통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앤틱한 인테리어의 카페, 호텔에 방문한 경험이 꽤 있는데 이곳은 유구한 역사가 담겨서인지 '리얼 앤틱'으로 느껴졌다.



시시각각 바뀌는 '트렌드'만으로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앤틱의 고고함을 이곳 켄싱턴 스타 호텔은 모든 공간에 잘 누적해온 것 같다.



1층에는 도서관이 있는데 사실 책을 읽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단 인증샷을 찍는 공간에 더 가까웠다.



이곳 역시 마치 영국에 여행을 온 기분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PM 06:00

호텔 주차장에는 런던의 2층 버스가 주차되어 있다.


호텔 주차장에는 런던의 2층 버스가 주차(?)되어 있다. 투숙객은 이곳에서 인증샷도 찍고 음료를 마실 수도 있는데 이 버스는 실제로 런던에서 운행되던 버스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몇 십 년 전에 엔진을 몸에서 떼어낸 이 버스는 런던에서 묻었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2층 버스니까, 2층으로 올라가 본다.



마치 빅 벤으로 향하는 버스의 승객이 된 듯 자연스럽게 2층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봤다. 시트에는 보풀이 가득했고 쇠기둥엔 여기저기 흠집이 나있었다. 간헐적으로 밖에서 주차된 차량들이 나가고, 새로운 차가 들어오는 모습들이 차창 너머로 보이니 이 버스의 엔진이 금방이라도 거친 파열음을 내며 다시 생명을 얻고, 태연하게 나를 싣고 빅 벤으로 향할 것 같았다.



버스에 꽤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더니 허기가 느껴졌다. 버스를 떠나기 전에 구석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인증샷으로 남겼다.




PM 07:00

아바이순대 전골을 먹기로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과 20분 거리에 있는 시장에 방문했다. 원래는 닭강정으로 허기를 달래려고 했지만 왠지 속초에서 닭강정만 먹고 가는 것은 손해 보는 기분이어서 아바이순대 전골을 먹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예전에 속초 여행을 하면서 아바이순대를 먹은 기억이 있는데 전골로 먹으니 더 맛이 좋았다) 시장 구경을 했는데 전골을 많이 먹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다양한 먹거리가 많았다. 후식으로 마시멜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바삭하게 구운 마시멜로의 식감과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PM 09:00

왠지 2018년이 완벽하게 마무리될 것 같은 밤이었다.


호텔방으로 돌아와 원래의 계획대로 책과 와인을 꺼냈다.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블루투스 스피커도 꺼냈다. 책, 와인 그리고 음악. 삼박자가 어우러진 밤. 그리고 창을 이따금 두드리는 산바람 소리. 왠지 2018년이 완벽하게 마무리될 것 같은 밤이었다.




AM 10:00

부지런히 조식을 먹고 애비로드에 갔다.


다음날 아침, 부지런히 조식을 먹고 호텔의 맨 위층에 있는 애비로드에 갔다. 간단한 음식과 주류 및 음료를 판매하는 레스토랑인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틀즈가 이곳의 메인 컨셉이다. 레스토랑의 한쪽 벽면엔 비틀즈의 앨범 커버가 걸려있고 곳곳엔 비틀즈가 입었던 옷이나 그들의 악기가 전시되어 있다.



체크아웃 전에 굳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모닝커피가 간절했기 때문도 있지만 설악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테라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비틀즈로 가득한 그곳에서 설악산을 바라보니 마치 런던의 펍에서 융프라우를 바라보는 듯했다.



(에비앙을 창틀에 놓고 찍었더니 오버를 약간 더해서 스위스가 따로 없었다)




AM 11:30

강원에서 런던 그리고 스위스까지.


아쉬움에 버스에 다시 올라타 지난 1박2일을 되새김질했다. 강원에서 런던 그리고 스위스까지. 공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변주를 경험하며 그 어느 날보다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늘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든다. 내년에는 또 어떤 공간들에 나의 시간이 담길지를 기대하며 2018년의 끝을 접는다.





스테이, 스토리가 되다.
staystory

스테이스토리는 호텔, 펜션 등 일상적이지 않은 새로운 공간에서의 하루를 공간에 대한 리뷰보다 '하루에 대한 스토리'로 풀어내는 Stay Magazine입니다.


사진 · 글 = 강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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