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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센느 Jun 05. 2019

<기생충>의 4가지 소름 포인트

영화 <기생충>을 봤다. 결론적으로 황금종려상을 2번 받고도 남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글쓰기를 미루고 미뤄왔던 나였지만, 이 영화만큼은 꼭 감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랜만에 키보드 앞에 앉았다.


내가 주요하게 느꼈던 포인트를 직접 짚어서 얘기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그런 포인트를 잘 짚어준 문장들이 네이버 영화 리뷰에 있어서 그 리뷰들을 갈무리하고 거기에 나의 감상을 덧대어 정리해본다.




1. 날씨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빈자와 부자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데 특히, 폭우는 그런 대비를 보여주는 가장 강렬한 장치 중 하나였다.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 굳이 정원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내는 박사장의 아들, 그리고 폭우 덕분에 미세먼지가 걷혀서 좋다고 얘기하는 박사장의 아내. 하지만 기택의 가족에게 폭우는 전쟁보다 무서운 재앙이 되어 보금자리를 빼앗았고 그들을 난민촌으로 내몰았다. 


나는 날씨가 돈이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자주 들었던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는 말이 어쩌면 그런 의미와 궤를 같이하는 걸지도. 


생각해보니 날씨가 좋은 날에도 기택의 가족은 딱히 행복할 여력이 없었겠다. 그들의 공간인 반지하엔 볕이 들어갈 여유조차 없으니까.




2. 가난을 가장 잔인하게 표현하는 방법 '냄새'



영화는 오락적 요소가 가득한 문화 체험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관객이 극장에 들어간 순간 남의 인생을 관망하는 방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그런 오락적 요소가 철저히 배제되어버리는 영화가 있는데 <기생충>은 그런 류에 가까웠다. 러닝타임 초반엔 몇몇 장면에서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중반부터는 그런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의 전환에 크게 일조한 것이 바로 박사장의 '냄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자신의 운전기사가 된 기택에 대해 얘기하면서 선을 넘는 냄새가 난다며 지하철에 타면 맡을 수 있는 냄새에 그것을 비유했는데 그 순간 방관자였던 관객 대부분이 기택의 삶에 자신의 삶 일부가 투영됐을 것이다. 반지하에 살지 않더라도 결국 우리도 '지하'철에 몸을 싣는 존재가 아녔던가. 


어쨌든, 이 냄새라는 요소가 결국 기택이 박사장을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게 되는데 나는 이 포인트가 이 영화에서 가장 소름이 돋고 잔인하다고 느껴진 부분이었다. 그 누가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를 냄새로 풀었던가. 문득 인터넷에서 우연히 봤던 글이 떠올랐다. "가난이 제일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십만 원 이십만 원이 부족할 때가 아니라 천 원이 부족해서 먹고 싶은 걸 못 먹을 때다"


남들은 사소하게 느끼는 것이 엄청 크게 내 삶에 작용할 때, 가난은 비로소 재앙이 되는 것이 아닐까. 고작 냄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기택처럼 말이다.




3. 아래로, 더 아래로



기택 가족이 지내는 반지하는 충분히 빈자의 삶을 표현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알고 봤더니 더 낮은 공간이 있었다. 관객 대부분이 이 지하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을 이 영화의 극적 분위기가 반전된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빈자들 사이에서 또 하나의 계층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빈부의 대비였다면 이 장면 이후에는 빈자와 빈자의 대립구도가 영화의 긴장을 이어간다. 나는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서로를 끌어당기는 빈자들의 모습을 보며 봉준호 감독이 우리 사회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라는 확신이 들었다. 갑이 만들어놓은 헤게모니 아래에서 을들이 서로 싸우며 밥그릇을 빼앗는 것.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왜 항상 을의 분노는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하는 걸까. 죽어라 싸웠지만 결국 지하에 들어가게 된 건 기택이었다. 원래 지하에 숨어 지내던 사람이 박사장에게 존경을 표하고, 그의 아내가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 수령을 찬양하는 북한 사람을 흉내 내는 모습은 헤게모니에 굴복한 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종의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4.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일까



기택은 아들 기우에게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계획이 이뤄지지 않는 일도 없다며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설파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도 '냄새'와 마찬가지로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에 감탄했다. 계획은 미래지향적인 행위다. 가난한 사람은 당장 오늘의 먹고사니즘이 더 시급하다.


극의 마지막 즈음에 기우는 부자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데, 이 부분에서 그의 삶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질 것 같은, 그런 고무적인 느낌을 받았다는 관객이 있는 반면에 그의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게 뻔해서 안타까웠다는 관객도 있었다. 나는 전자에 가까웠는데, 계획이라는 것은 결국 성공하지 못할지언정 세우는 것만으로도 삶을 조금 더 진보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결국 삶은 매일 쌓이는 '가난의 이자'에 잠식당할 뿐이고, 반대로 계획을 세우면 매일 원리금 상환을 통해 가난을 해소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물론 이마저도 누군가에겐 매우 비현실적이고 팔자 좋은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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