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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센느 Mar 09. 2020

11. "모르는 게 약이다", 몰라서 더 아름다운 것들

일일일생각 | '모름'에 대한 단상

one day

200309

one think

'모름'에 대한 단상

vol. 11





나는 여행지에서 걷는 걸 즐기는 편이다. 누구나 아는 랜드마크보다 골목 구석구석의 풍경에서 그 지역만의 특색을 발견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첩을 확인해보면 골목을 찍은 사진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희한하게도 국내여행을 할 때는 그 반대가 돼서 골목의 사진보다 랜드마크의 사진을 더 많이 찍게 된다.


나는 이런 현상이 딱히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인지를 하고 있음에도 딱히 그 이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명을 찾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예능을 보다가 그 이유를 깨닫게 됐다.


외국인 친구를 한국에 초대해서 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그날 방송에서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눈이 시릴 정도로 한글이 빽빽한 간판이 즐비한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 친구들의 모습이 나왔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거리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고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처음엔 그 모습에 의아하다가 문득 나도 외국에서는 저렇게 외국어로 가득한 길거리에서 '이국의 공기'를 느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내, 내가 왜 해외여행을 갔을 때만 거리의 사진을 더 많이 찍었었는지 이해하게 됐다.


사람은 문자를 접할 때 그것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information'으로 받아들이지만 정보가 없으면 오직 'visual'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그림과 다를 바 없이 하나의 디자인적 요소로 인지하는 것이다.


내가 해외여행을 하면서 마주한 수많은 문자들은 정보라기보다는 이국적인 풍경을 더 확고하게 해주는 하나의 '비주얼 요소'일뿐이었던 반면, 국내에서 마주치는 간판들은 '정보'였기 때문에 그것이 아름답게 보이기보다 그저 수많은 정보가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문자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에서도 발생한다. 예전에 한 외국인이 한국 주택가의 풍경을 보면서 "한국은 참 낭만적인 나라다. 모든 주택이 옥상에 푸릇푸릇한 정원을 가꾸고 있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것이 정원이 아니라 녹색 방수 페인트를 발라놓은 것이었던 웃픈 해프닝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정말 풀밭처럼 보이긴 하다;;


이렇게 보니, 여행자는 "모르는 게 약"인 것 같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탈로 찾아온 곳에서 굳이 '일상의 고루함'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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