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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센느 Mar 11. 2020

13. 내가 인문학을 읽는 방법

일일일생각 | 인문학은 결국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다.

one day

200311

one think

'인문학'에 대한 단상





예전에 나는 인문학을 읽을 때 주로 그것이 보여주는 현상(現象)에 집중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소설의 서사에 집중했고, 미술 작품을 볼 때는 그것의 형태에 집중했고, 음악을 들을 때는 멜로디에 집중했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현상보다 '사람'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인문학은 자연을 다루는 자연과학과 다르게 말 그대로 인간을 다루는 학문 영역이다. 그래서 인문학 작품에는 항상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얼마나 잘 캐치하느냐에 따라 그것을 얼마나 잘 소화했느냐의 성패가 갈린다는 게 내가 요즘 인문학을 대하는 자세다.


예를 들어보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다. 만약 이 책을 읽으면서 서사에 집중한다면 젊은 지식인 "나"가 크레타 섬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해가는지에 대한 변화와 그 사이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 집중한다면 관념에 갇힌 채 삶을 책 읽듯 사는 "나"라는 캐릭터, 그와 반대로 매일 주어지는 오늘이 마치 마지막 날인 듯 온몸으로 만끽하며 사는 "조르바"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만약 두 인물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됐다면 그 결과로 이런 변화를 겪을 수 있다.


1) 나는 두 인물 중 누구와 가까운가? 난 어떤 삶을 더 지향하는가? (나에 대한 이해)

2) 내 주변에는 "나", "조르바" 같은 사람들이 누가 있는가? (타인에 대한 이해)


영화로도 제작된 <그리스인 조르바>


인간은 다양한 캐릭터의 군상이다. 우리 주변인만 살펴봐도 외향적, 내향적, 독단적, 친절한, 사려 깊은 등 성격이나 행동에 따라 나눌 수 있는 범주가 수 십, 수 백 가지다. 우리는 살면서 필연적으로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들을 직접 겪어보기 전에 그들을 오롯이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문학을 읽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배우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인간도 있구나"의 외연이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우리가 편안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의 범주가 늘어나며 이는 곧 삶의 다양성 확장으로 직결된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듣는다. 만약 현상에만 집중한다면 심장까지 울리는 웅장한 멜로디에 전율을 느끼면서 뭔가 '운명'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 집중한다면 이 교향곡을 작곡한 베토벤의 생애를 살펴보게 된다. 누구나 잘 알듯, 베토벤은 음악가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청각장애를 앓았다. 이 일로 유서까지 쓸 정도로 실의에 빠졌던 그였지만 결국 슬픔을 딛고 일어나 청력을 잃기 전보다 더 열심히 작곡활동에 매진했고, 그 결과 그의 대표 교향곡인 <영웅>, <운명> 등이 탄생했다.


이런 그의 생애를 이해하게 되면 <운명>은 다르게 들린다. 노래 도입부에서 심장을 울리는 "따다다단~" 음률에서 이전처럼 단순히 웅장함만을 느끼기보다 베토벤이 느꼈을 운명의 거스를 수 없는 힘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처럼 멜로디의 행간 읽기를 통해 운명의 힘에 압도될 수도 있고, 혹은 그런 압도되는 힘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운명을 만들어 낸 베토벤의 삶을 통해 용기를 얻을 수도 있게 된다.


인문학은 결국 '현상'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다. 글, 그림, 음악 등 다양한 형태로 그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지만 결국 그것이 향하고 있는 것은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문학에서 인간을 읽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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