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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센느 Mar 12. 2020

14. 스타트업에서 내가 굳이 옷을 차려입는 이유

일일일생각 | '이미지'에 대한 단상

one day

200312

one think

'이미지'에 대한 단상




스타트업은 대개 자유 복장이 기본 룰로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여름이면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복장에 제약이 없다. 나는 운이 좋게도 직장생활을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광고대행사에서 시작했고 그 이후로도 스타트업에서만 근무를 했기 때문에 이런 '자유 복장'의 혜택을 경력기간 내내 누려왔다.


자유 복장은 참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별거 이상'인 문화다. 그래도 직장생활 1년 차 때까지만 해도 정장을 입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찐 직장인'처럼 느껴져서 뭔가 멋있어 보이기도 했는데, 경조사 때 한 번씩 정장을 입으면 이걸 입고 어떻게 일을 하나 싶어서 그런 마음이 싹 가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유 복장이 참 좋은 거구나라고 느끼게 됐다.


그런데 자유 복장 문화에는 늪과 같은 함정(?)이 있다. 본래 '업무 효율성 증대'의 취지에서 생긴 문화이지만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점차 그 취지를 잊고 마냥 '편함'을 추구하다 보면 옷차림이 한없이 후리해진다.


나는 예전에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멀끔한 코트를 차려입은 맞은편 자리의 동료를 보면서 그의 이미지가 참 세련됐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머릿속에서 그를 떠올릴 때는 코트, 재킷, 셔츠가 떠올랐고 그런 탓에 그가 하는 말들이 더 신뢰가 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는 모자를 쓰고 출근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는데 이르렀다(하루도 아니고 매일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좋았던 첫인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모자, 반바지, 슬리퍼를 착용한 추레한 모습이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후리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왠지 업무적으로 신뢰가 안 가게 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종종 "저건 잠옷이 확실해"라는 생각이 드는 옷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때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 사람의 모습이 우리가 그를 인지하고 있는 '이미지'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옷차림인 모습을 우리가 떠올리는 지다. 아마 그것은 대개 그 사람이 가장 자주 입었던 옷이거나, 그 사람이 나의 의식에 강렬하게 각인됐던 순간에 입었던 옷일 거다.


나는 이런 깨달음을 얻은 뒤로 누군가 나를 떠올렸을 때, 적어도 추레한 모습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고 이를 위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옷은 멀끔하게 차려입자는 나만의 룰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룰을 나름 착실하게 잘 이행해서 어느 직장에서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옷을 잘 차려입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옷을 차려입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나의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지를 물으면 내가 추구했던 이미지를 그대로 말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미지 덕분에 나에게 신뢰가 간다는 얘기도 들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 복장도 마찬가지다. 업무 효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을 잘 지키면서 자유를 만끽해야 하는데 그 선을 넘어버리면 그 뒤에는 알게 모르게 책임질 일이 생긴다. 내가 포착한 책임은 바로 '이미지'였다. 잘 알다시피 훼손된 이미지는 회복하기 어렵다. 지금 나의 복장은 어떤가? 사람들이 나를 떠올렸을 때 어떤 복장을 떠올릴까? 한 번 고민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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