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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강센느 Mar 28. 2020

고모의 이름을 2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1일1생각 #30

고모와 나는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냈다. 보통 고모라는 존재는 명절에만 만나는 사이지만 나의 경우 어릴 때 방학 내내 고모 댁에서 지낸 적도 있고, 명절이 아닌 때에도 종종 고모 댁에 놀러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고모가 낯설게 느껴진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고모의 본명을 알게 된 날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모를 '고모'라고만 불러왔기에 본명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본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내왔다. 그런데 요즘, 나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점점 없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삼촌, 사위, 매니저 등 갖가지 호칭들이 나의 이름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00 아빠'로 불리겠지.


생각이 이쯤 닿으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이름을 잃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을 대체하는 호칭들이 대개 직업적 책임감, 가족적 책임감 등을 부여하는 것이어서 그런 책임감 때문에 나의 본모습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는 내가 불려지는 호칭에 따라서 나와는 또 다른 새로운 자아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일하게 내 이름을 오롯이 불러주는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만 내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는 느낌이랄까.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나는 고모의 이름을 우연히 알게 된 이후로 고모의 삶에 대해서도 궁금해졌고 그러자 고모가 '낯선 타인'으로서, 독립적인 '인격'으로서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그 이전에는 고모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저 아빠의 여자 형제로만 관계 정의가 되어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쌓은 친분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왠지 애달픈 느낌이 들어서 앞으로 누구와 관계를 맺든 내 이름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가장 나다울 때 행복한 것인데 갖은 호칭들에 나다움을 점점 잃어버리는 게 썩 긍정적이지 못한 삶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사회적 책임감 때문에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는 와중에도 내 이름 석자로 이루어진 단단한 뿌리를 갖추고, 그로 인해 이름을 잃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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