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생각 #35
1일1생각 #
결혼을 한 이후로 아내와 나는 여러 부분에서 역할 분담을 했는데 식사와 관련해서는 아내가 요리를, 나는 설거지를 담당하게 됐다. 이래 봬도 자취 경력이 10년에 가까웠기 때문에 설거지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도 얼마 안 가 산산이 무너지게 됐는데, 결혼 후의 설거지는 이전에 내가 해왔던 설거지와는 난이도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우선 한 명분이 더 늘어났기 때문에 양이 많아진 것은 기본이고, 예전에는 많이 신경 써봤자 김치찌개 정도의 요리를 했던 나와는 달리 사용하는 재료가 2~3배 이상이 되는 고난도의 요리를 선보이는 아내 덕분에 설거지를 해야 하는 조리기구도 다양해졌다.
설거지가 어려워지니 자연스럽게 나는 식사 후에 바로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점심 설거지를 저녁까지 미뤄서 한 번에 몰아서 하는 몹쓸 습관이 생기게 됐다. 당연히 "식후 바로 설거지를 한다"는 조약을 어긴 나에게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됐지만 그래도 설거지를 미루는 일은 거의 격일로 발생했다.
이쯤 되니 설거지를 제때 하는 사람들은 뭘 해도 성공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인터넷에서 술에 아무리 취해도 집에 오면 씻고 자는 사람은 뭘 해도 성공할 사람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내 체감상 그것보다 설거지를 바로 하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설거지를 미루면 나중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했는데, 궁색한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설거지는 필연적으로 식후에 진행되는 활동인데 인간은 식후에 잠깐이라도 휴식을 하는 문화적 습관이 있다. 그래서 나도 돌이켜보니 항상 밥을 먹고 나서 5분만 쉬고 설거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휴식을 취했고 항상 그 휴식이 길어져서 설거지 타이밍을 놓치는 불상사를 겪게 됐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몸이 학습해온 습관을 고쳐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식사-휴식-설거지가 아니라 식사-설거지-휴식의 습관을 새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설거지까지 마치는 것이 식사가 종료된다는 마인드셋을 새로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자신은 없다. 혹시 식후 설거지를 바로 하시는 분은 비법 좀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