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생각 #41
바야흐로 콘텐츠 플랫폼 시대다. 미니홈피와 블로그 시대를 넘어서 브런치(글), 인스타그램(사진), 유튜브(영상)와 같은 플랫폼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요즘엔 누구나 무료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핵심은 단순히 자신을 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슈퍼스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미 여러 콘텐츠 플랫폼에서 평범한 사람이 일약 슈퍼스타가 되는 사례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나 역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슈퍼스타까지는 아니었다) 브런치는 아니었지만 네이버에 포스트라는 콘텐츠 플랫폼이 처음 생겼을 때, 인문학과 관련된 콘텐츠를 꾸준히 연재한 적이 있는데 운 좋게도 해당 플랫폼의 담당자에게 연락이 와서 1년간 콘텐츠 에디터로 활동을 하게 됐었다.
당시에 내가 쓰는 모든 글이 네이버 메인에 소개됐었고 총조회수가 200만에 육박할 정도로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 당연히 200만이라는 숫자는 내가 살면서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숫자였기에 매일 꿈속을 거닐 듯 황홀함 속에서 콘텐츠를 연재했던 기억이 있다. (안타깝게도 네이버 포스트 채널은 현재 거의 망한 플랫폼이 됐다...)
인문학 콘텐츠로 놀라운 일을 경험한 뒤로 나는 더 이상 나에게 똑같은 행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콘텐츠 제작을 3년 넘게 쉬게 됐다. 당시에 브런치에 글을 간간히 쓰긴 했지만 이전만큼 큰 호응을 얻지 못한 탓에 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새롭게 시작한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이었는데 사진 한 장만 찍어서 올리면 되기에 다른 플랫폼보다 콘텐츠를 만드는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듯 일상 사진을 올리다가 결혼 이후에는 집 인테리어 사진을 일관성 있게 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놀랍게도 국내 최대 인테리어 플랫폼인 오늘의집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 연락을 받고, 일주일의 콘텐츠 제작 기간을 거친 뒤 오늘의집에 정식 콘텐츠로 소개된 우리 집은 이번에도 정말 운이 좋게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결과적으로 오늘의집 역대 온라인 집들이 콘텐츠 중 TOP 50에 들어가게 됐다.
나는 딱히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꾸준함을 가지고 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니 운 좋게도 2번이나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게 됐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근자감이 생겼달까.
무슨 일을 하든 꾸준히, 남 다르게 하면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내가 내 삶을 대하는 자세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런 근자감이 생기니 모든 콘텐츠 플랫폼은 언제든지 나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도 예외가 아니었다. 요즘, 나는 브런치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브런치의 메인에 있는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볼 때마다 나도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염원해왔던 터였다.
지난 2번의 기회에서 아쉬웠던 점은 해당 플랫폼에서의 반응에 그치는 단발성 콘텐츠였다는 점이었다. 이제 내 콘텐츠를 단순히 웹에서만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만져볼 수 있는 책으로 발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런 나의 허황된 꿈을 그나마 실현 가능하게 해주는 플랫폼이 브런치라고 생각했다.
<마케터의 집꾸미기>라는 콘텐츠가 그 신호탄이다. 많이 부족함을 알기에 예전만큼 분에 넘치는 반응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늘 나는 그렇게 큰 기대 없이 해왔기에 이번에도 끈기를 가지고 연재를 이어나갈 셈이다.
유명한 광고 카피인 "야, 너두 할 수 있어"를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누구든지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라고. 다만, 그 기회는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한없이 사소한 일이라도, 혹은 정말 특별한 일들까지도 플랫폼에 꾸준히 공유하는 사람에게만 그 기회가 주어진다.
만약, 이 좋은 기회를 1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단 3줄의 짧은 글이라도 매일 브런치에 남겨본다면 언젠가 그 사소함이 상상치 못한 위대함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