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맙소사, 단골 미용실의 헤어 디자이너가 이직했다.

1일1생각 #43

by 강센느

나는 이발을 자주 하는 편이다. 머리가 짧을 때는 2주에 한 번씩 미용실을 찾은 적도 있고, 머리가 길 때는 파마를 하기 위해 1~2개월에 한 번씩 미용실을 찾았다. 그래서 집 주변에 단골 미용실을 만들고, 미용실에 근무하는 헤어 디자이너 중 나의 두상과 취향을 잘 파악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에 꽤나 많은 품을 들인다.


마음에 드는 헤어 디자이너를 찾는 일이 여간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집을 이사하지 않는 이상 담당 헤어 디자이너를 바꾸는 경우는 드물었다. 무엇보다 헤어 디자이너에게 머리를 자주 맡길수록 내 취향을 더욱 잘 고려해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특성 또한 담당 헤어 디자이너를 바꿀 수 없는 이유로 작용했다.



#1 담당 헤어 디자이너가 이직했다


예전에 자취를 하던 시절, 그때도 내가 2년 정도 꾸준히 머리를 맡긴 헤어 디자이너가 있었다. 매번 '인생 머리'를 갱신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취향을 잘 파악해서 머리를 해주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돌연, 이직을 하게 됐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자신이 담당하는 고객들에게 전체 문자로 이 소식을 전했다)


그만둔다는 문자를 받고 충격을 받았으나, 이내 그 헤어 디자이너가 이직을 하게 된 미용실이 원래 다니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원래 그녀가 근무하던 미용실(누구나 잘 아는 유명 브랜드의 미용실이었다)보다 이직한 미용실의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는 사실도 알게 돼서 나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위치도 이전처럼 집과 멀지 않고, 동일한 사람에게 이발을 받는데 가격은 거의 절반 가격이 되었으니 고객 입장에서는 나쁠 게 전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2 담당 헤어 디자이너가 변했다


나는 커트를 하기 위해 문자를 통해서 안내받은 새로운 미용실을 찾았고, 그 낯선 미용실에는 익숙한 나의 담당 헤어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녀는 이전과 똑같이 나를 반겨줬고, 똑같이 좋은 실력으로 내 마음에 쏙 드는 헤어 스타일을 만들어줬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의 반값 수준인 가격이었다. 나는 속으로 '개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나는 그다음에도 그녀를 찾았다. 이번엔 커트가 아니라 펌을 하기 위해서였다. 펌도 마찬가지로 이전보다 절반 가격이었다. 그런데 예약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나는 원래 예정된 시간보다 무려 1시간이나 늦은 시간에 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내가 당황스러웠던 점은 이전과 달라진 헤어 디자이너의 태도였다.


예전엔 시간이 딜레이 되는 경우가 별로 없기도 했지만 혹여나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땐, 차를 대접해주고 중간중간 찾아와 대기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에 대한 안내를 해줬었는데, 그런 사려 깊은 태도는 차치하고 어떠한 해명이나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는 일에 치여서 매우 정신없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가격이 저렴한 탓에 퀄리티가 낮은 약을 사용했는지 펌이 이전만큼 예쁘게 나오지도 않고, 금방 풀려버렸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다시 찾아가서 A/S를 요청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 헤어 디자이너를 찾지 않았다.



#3 헤어 디자이너를 이해해봤다


나는 곰곰이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이해를 해보려 노력했다. 그녀는 바빠서 정신이 없었을까? 아니다. 이전의 미용실도 그만큼 손님이 많아서 바쁜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그 날 기분이 안 좋았을까? 아니다. 1시간 대기 후 펌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기분이 꽤나 좋아 보였다. 오히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내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그녀가 속한 미용실이 달라졌다는 것. 박리다매 컨셉의 그 미용실에서 '서비스'의 개념은 그저 고객이 원하는 헤어 스타일에 맞춰서 머리만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 외의 서비스를 바라는 사람은 웃돈을 주고 다른 미용실을 찾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렇다. 아마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서비스 퀄리티를 하향평준에 맞췄을 것이다. 나는 이 일을 통해서 두 가지의 깨달음을 얻었는데 첫째, "싼 게 비지떡"이라 말은 정말 맞는 말이라는 것. 둘째, 주변 환경은 생각보다 우리의 의식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평균보다 싼 가격의 무언가가 있을 때는 우선적으로 의심을 가지게 됐고, 부담이 좀 되더라도 평균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는 쪽으로 선택하려 노력했다. 종종, 주머니 사정에 따라 불가피하게 싼 가격을 선택했을 때는 역시나 비용이 세이브된 만큼의 낮은 퀄리티로 후회하게 됐다.


그리고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할 때는 그 사람이 소속한 집단이나 환경을 유심히 살폈다. 분명 그가 속한 소속, 환경이 그 사람의 삶에 7할 이상의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유추한 사람의 성향은 대부분 결과적으로 정확도가 높았다.


덧붙여,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내가 요즘 다니는 미용실은 평균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비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매번 느끼는 심리적 만족감을 감안하면 추가로 내는 비용을 상회하는 가치를 느끼고 있어서 만족 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는 것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