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생각 #44
몇 년 전, 나는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화훼 관련 서비스 창업을 위해 프린트 화분(고객이 원하는 그림이나 문구를 인쇄해주는)을 판매하는 회사에서 잠깐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맡은 역할은 고객이 주문한 상품 리스트를 확인하고 박스에 해당 상품을 넣은 뒤, 미리 인쇄해둔 택배 스티커를 박스에 붙이는 일이었는데 화분마다 박스 규격, 포장법이 달라서 생각보다 일이 손에 익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몸으로 하는 일을 잘 못하는 체질이라 더 힘들기도 했다)
그렇게 적응 기간이 지나고 일이 꽤 손에 익자, 처음엔 2시간 걸리던 일을 거의 1시간 만에 끝낼 정도로 손이 빨라졌다. 어느 날, 당일 주문 물량을 생각보다 일찍 포장하고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내 사수로 있던 사람이 돌연 나를 불렀다.
저, 이거 화분이 잘못 들어간 것 같은데요.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혹시나 실수를 했을까 봐 크로스 체크를 했는데, 다행히 내가 실수로 잘못 넣은 화분을 배송 보내기 전에 사수가 발견한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됐나 살펴봤더니, 주문한 상품과 비슷하게 생긴 식물을 내가 실수로 잘못 넣은 것이었다.
"이렇게 식물을 헷갈려서 넣는 거야 어떻게 수습이 될 수도 있는데, 만약 상견례 화분(상견례 전에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사위 ㅇㅇㅇ, 며느리 ㅇㅇㅇ 올림"이 새겨진 화분을 양가 부모님께 선물로 보내는 것)을 잘못 넣으면 큰일 나요. 상견례 전에 다른 사람 이름이 새겨진 화분이 양가 부모님께 배송되면 이건 뭐 어떻게 수습도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니까 더 신경 써주세요."
나는 그 말을 듣자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의 관점에서 수천 개의 상품을 제대로 보내고 단 한 개만 실수로 보낸다면 정확도가 99.99%여서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지만, 잘못된 상품을 받은 고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정확도 따위는 상관없이 그저 100%의 확률로 실수를 하는 업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그 잘못 배송된 상품이 상견례 화분과 같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진 상품이라면 나의 사소한 실수가 고객에게는 일생일대에 있어서는 안 될 최악의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때 충격이 적잖이 컸던 터라, 그 뒤로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실수가 없는 게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일했고 덕분에 알바를 끝낼 때까지 실수를 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이 경험을 계기로 판매자와 고객 사이에 상상 이상의 '온도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 판매자와 고객 사이의 온도차가 발생하는 경우다. 처음 간 카페에서 불친절한 알바를 만났을 때, 나는 그 카페가 불친절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고 다음부터는 그곳을 안 가게 된다. 하지만 알바의 입장에선 어쩌면 그날 99명의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하다가 오직 1명에게만 불친절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럼 이 알바는 99%의 확률로 친절했기 때문에 자신이 불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판매자는 늘 다수의 고객을 상대하고, 고객은 늘 소수의 판매자를 상대한다. 이 불균형을 이해하지 못한 판매자는 실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문제는 요즘 고객들은 불편한 일을 겪었을 때 자기 혼자 삭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 그것은 인터넷에 공론화되고 이런 네거티브한 소식들은 그 어떤 소식들보다 빠르게 바이럴 된다. (이런 일을 통해 기업이 막대한 손해를 입는 사례들을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뉴스를 통해서 접할 수 있다)
이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판매자가 고객을 대할 때 1:100이 아니라 1:1을 100번 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나의 사소한 실수가 고객에게는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일생일대의 사건이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