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하루 나아가기 -
돌이켜 보면 대기업 공채만큼, 새로 뽑은 직원들이 지금 당장은 미숙할 수 밖에 없으나, 회사의 자산으로
커나갈 것이라는 기대 아래 부서에서 응원하는 분위기는 이후 이직에서는 다시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표현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지, 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커녕 본인보다 '만만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꽤 많았던 것 같다.
첫 회사에서 겪었던 여러 부서들, 이후 겪었던 여러 회사들을 같이 반추해 보아도, 결국 회사는 사람이
전부였다. 입사 후 몇 년 지난 때부터 정리하기 시작한 업무 기술서는 지금도 몇 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고 있지만, 세부 업무들을 들여다 보면 "아 그 때 A 선배랑 했던 일이지", 혹은
"이거는 B 후배가 말 안 들어서 고생했던 건인데..."처럼 당시에 같이 일을 한 분들과 해외 출장으로
다른 국가를 누비면서 라운지에서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보고때 팀장님이 어떤 표정을 지으셨었는지
같은 부분적인 기억들까지 선명하게 되살아 나곤 한다.
신입사원으로 일을 해나가는 과정들은, 어느 정도 내 전문성과 조직에서의 인정과 평판, 사회에서의
방어 스킬을 쌓기 전 '나에 대한 상대방의 약간의 인내심'을 무기로 전에 못 겪어본 상황에 부딪혀 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부서에는 각자 다른 스타일로 업무를 꿰고 있고 나와 금상첨화로 유머 코드까지 맞을 때도 있는,
따스한 선배들이 꽤나 있었고, 지금 돌이켜 봐도 이 분들과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이 크나큰
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서 말한 '만만한 사람'으로 보는 선배들도 드물게는 있었고, 여기서 내가 오롯이 감내해야 할 것들은 부당한 업무 지시와 비판보다는 비난에 가까운 피드백, 전혀 연관성이 없는 상황에서 괜사리 분풀이
대상이 되는 것들 등이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전화가 울리는 소리를 놓쳤을 때의 비난, 본인 휴가까지 차일피일 일을 미루더니
갑자기 금요일 퇴근 전 본인 없는 동안 끝내놓으라는 지시 등... 아무리 좋은 선배들이 많아도 그 분들과만
일을 할 수는 없었고, 횟수의 차이는 있지만 몇 번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학교 다니는동안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은 칼같이 손절했던 나에게 이러한 환경은 결코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회사에서의 생활은 어쩌면 본인의 전문성과 스킬셋을 갈고 닦는 것보다도 강인한 몸과 마음을 지켜 나가고, 여러 상황에서의 경험치를 쌓는 게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