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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당 Mar 28. 2021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던 날들.

원래 다 이런 거겠죠. 안 그런 게어디 있겠어요.

 이렇게 글.. 까진 아니고 무언가를 써 내려간다는 게 얼마만인가 싶다. 써 내려간다는 건 생각이든 뭐든 끄집어낼 수 있는 덩어리가 생겼다는 것이고, 이 덩어리를 잘 굴리고 굴려서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야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럼 그동안에는 어땠냐고? 여유가 있는 듯했지만 없었다. 


 여유라는 걸 온전히 즐기려면 몸도 마음도 모든 게 편하고 기분 또한 차분하게 가라앉아야 가능한데, 나한테 그런 시간은 없었다. 몸은 어떻게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발버둥 쳤고, 마음은 회사에서 벌린 일들이 많아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힘을 소진했고, 이 둘 때문에 좋을 리 없던 기분을 위로하기 위해 폰 게임만 미친 듯이 해대고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웃긴 동영상만 엄청 봤다. 일종의 번아웃-일종이란 단어가 붙은 게 너무 좀 우스꽝스러운데 이런 것도 번아웃이라고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붙였다.-이라고 표현해본다. 

 번아웃. 번아웃. 아, 모카번 생각난다. 로티보이 모카번 맛있었는데.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크런키 초콜릿 두 개 베어 무는 지금의 시간이 정말 좋다. 정확하게는 초콜릿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먹는 것 또한 얼마만일까, 달력을 보니 두 달이 지났다.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아 재택근무를 하던 지난날의 나는, 하필 집 앞에 있는 마카롱 가게에 발을 들이는 바람에 틈만 나면 사 먹으러 다녀왔다. 그 결과, 몸도 불고 체지방도 불고 뒤룩뒤룩 불어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운동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그랬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달력에 표기된 시기가 제가 좀 불어나는 시기인 것 같은데, 그것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지만 회원님은.. 이라며 말을 아끼는 선생님의 말에 거하게 충격을 받고 모오든 군것질을 끊었다.


 오랜만에 먹는 군것질, 초콜릿의 맛은 가히 최고다. 양손 엄지 척 쌍따봉을 날려도 모자라다. 정말 맛있다. 그래서인지 텐션이 아주 높다. 문장에서 느껴지진 않겠지만 아무튼 텐션이 높다.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건 여유뿐만 아니라 초콜릿을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유, 짜릿해.




 숨 돌리고 나서 얘기할 수 있는 나의 근황,

 여전히 고민이 많고 바쁜 나는 언제 탈출할 수 있을까.


 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한참 고민에 빠져 다음 잡을 모색하는 상황에 이르렀던 그때-꽃은 당장 병행작업할 수가 없어 당분간 휴업을 선언했고, 이거라도 우선 배워보자며 독학으로 코딩 공부 틈틈이 하고 있었다.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 어떤 프로그램의 구인 글이 올라오는지도 살펴보고 있었고.-후배가 뒤통수 세게 한 대 팍 치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그가 맡고 있던 업무까지 나에게 다 넘어왔고, 나는 앞길 내비게이션 검색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좀 나눠 맡아서 하겠지만, 나눠 맡게 하려면 그 일에 대한 이해도부터 기획하는 것부터 계획 수립까지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냥 내가 다 해야 속이 편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일단 하자.'며 무조건 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일단 하자.'의 생각은 들지 않고, 

 '이걸 내가 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이걸 제가 해도 되는 거예요?'라는 생각만 맴돈다. 이 말은, 내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한다고 해도 아는 바가 없는데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맡긴다는 거다. 내가 분명할 수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 부탁하는 거라는 뭔 말도 안 되는 얘기까지 곁들인. 얘기를 듣고 나니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하루빨리 벗어나는 게 내 신상에 이롭겠다, 그러면 나 무엇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거야? 물음표와 느낌표 범벅인 이 답답함을 개인 비공개 SNS에 올렸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한 선배의 댓글이 달렸다. 그럴 땐 자기와 함께 밥을 먹으면 된다고.

  



 선배에게, 나의 이러한 회사 라이프와 고민하고 있던 앞길 내비게이션 목록을 펼쳐 보여드렸더니 선배는 현실적인 조언과 본인의 경력과 관련된 이야기, 업계 동향과 앞길 내비게이션 목록을 추려주기까지 장장 6시간에 걸친 컨설팅 상담을 해주셨다. 이 선배가 그만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이유는 정말 다른 사람들 못지않은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에.-얘기하는 순간 누군지 바로 추측 가능하기에 조용히 있는다.-해 본 사람이 더 잘 안다고, 정말 제대로 잘 아는 분이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여 말하기를,


 "에이, 큰 고민인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아니야. 괜찮아. 네가 해온 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 그게 아니라 그걸 해온 사람이 너고, 너밖에 없고, 그걸 할 줄 아는 건 대단한 거야.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야. 과소평가하지 마."




 태풍을 맞이했다가 또 한번은 아주 평온하고 고요했다가, 하지만 모든 자연재해를 아무 대책 없이 그대로 들이받은 탓에 방향키마저 고장 나 망망대해를 그냥 둥둥 떠다니던 통에, 갑자기 발견한 섬에서 것도 운 좋게 실력 좋은 능력자를 만나 배를 고치고, 물자를 조달받고, 항해에 필요한 여러 조언을 받고 다시 돛을 띄우게 됐을 때. 전과 똑같은 상황을 분명 또 겪겠지만 이번에는 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그 마음으로, 그 결심으로. 


 고민의 닻을 내린 정박은 이제 끝났다. 새 돛을 띄우고 바람을 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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