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의 위기 속에서 솟아날 구멍 찾기.
이 글을 처음 적은 시간은 12월 21일 월요일 낮 12시 17분. 보통의 월요일이었다면 낮 11시 59분까지 업무를 하고 점심으로 가져온 도시락을 먹으며 직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을 거다. 얼어붙었던 사무실 내의 차가운 공기와 고요한 적막을 깰 수 있었던 시간. 시답잖은 농담을 해도 마냥 웃음이 나왔던 따뜻한 시간이었는데, 오늘의 그 시간에 나는 집에 있다.
이번 주 월요일의 나는 출근하지 않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 타와 컴퓨터 앞에 앉아 굉장히 붕- 떠 있는 상태로 여유를 누리고 있다. 출, 퇴근 시간과 준비시간이 빠진다고 치면 평소보다 4시간 남짓의 여유가 생긴 거다. 하지만 여유롭지 않은 여유. 그러니까 결론은, 재택근무 중이라는 얘기다. 2는 모르고 1만 아는 주위 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집에 있으니 좋지 않아? 부럽다.' 그들의 말에 나는 한 마디 덧붙여 전한다.
'집에서 일하니 좋지. 그런데 내 월급이 깎이는데 좋을 수가 있을까?'.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55일간의 무급휴가를 보내고 이번이 두 번째 무급휴가. 회사에서 말로는 재택근무 및 월급 삭감이라고 전했지만 그 말 안에는 무급휴가도 포함되어 있는 거라 어쨌든 두 번째 무급휴가가 맞다.
열흘 남짓의 기간밖에 안 되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길든 짧든 무급휴가는 회사 사정이 안 좋다는 이유로 언제든 이루어질 수 있는 사항이고, 똑같은 이유로 퇴사 또한 이루어질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러다 또, 시작하게 생겼다.
수많은 갈림길과 가시밭길, 모난 돌 하나 없는 안전한 평지대와 험난한 늪지대까지 온갖 길을 섭렵하며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그렇게 지나오는데 걸린 십여 년의 기간. 나는 두 차례의 변곡점을 맞이했었다. 메인작가가 되겠다며 거침없이 던졌던 방송작가의 일상의 깨졌을 때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프리저브드플라워 전문가로서의 일상이 깨졌을 때.
이정표는 있으나 어떠한 글자도 표식도 없는 무의 상태의 이정표에 어떤 내용이 새겨지게 될까.
나 이거 할래!라고 다짐을 던지는 건 하지 않는다. 특히,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하게 던져보는 다짐은 스스로의 삶을 무책임하게 만들고 무너져버리게 하는 일등 공신과 다름없을 터. 그런 건 별을 보는 게 좋아서 '천문학자가 될래요!'를 외쳤던 열세 살의 나 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짐을 던지기 전에,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지나온 길을 좀 되짚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있긴 할까. 있긴 있었을 텐데 간단하게만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짚고 가진 않았으리라. 나는 남 앞에서 나를 드러내는 것보다 나 스스로에게 나를 드러내는 걸 제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이제는 내 민낯을 제대로 마주할 줄 알아야지, 그래야 또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지.
나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해?
이렇게 또, 맞이하게 되었다.
나의 세 번째 변곡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