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 무엇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러고 있는 걸까.'
며칠 전이었다.
주 5일 근로자여도 근무하는 곳의 특성상 휴일 없이 돌아가는 곳이라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주말에도 업무에 대한 상황 보고를 종종 받고 처리하는 편이었고, 그 며칠 전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사실, 그 메시지가 아니었다면 '그런 날'로 치부하고 넘겼을 텐데, 이번엔 좀 달랐다.
띠링띠링- 울리는 회사 단톡방 알람 사이로 뜬 다섯 글자, 그것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큰일 났어요."
팀원에게 무슨 상황인지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가 운영하는 공간 중 한 곳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정부의 방역 방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고됐다는 것이고, 신고자는 공간을 이용하려던 고객이었으며, 이 고객이 신고한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방역 방침 및 사측의 공간 관리 규정에 따라 당장 공간을 이용하지 못하고 대기하게 되자 이에 불만을 품어서."였다고 했다. 보고를 듣고 나자마자 든 내 생각은 이랬다.
'경찰에 신고까지 할 정도라면, 이때 이 고객을 응대하던 직원의 태도는 어땠다는 거지?'
사실, 실내 50인 이상 집합 금지하는 시설이 아니지만 공간을 이용하는 고객층 중 어린이가 많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50명 이상 동시 이용 제한을 시행하고 있었고, 게다가 우리가 운영하는 곳은 실내가 꽤 넓어서 동시 이용 100명까지도 가능한 곳이라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이다. 아무튼, 이것과는 별개로 그 고객에게 당시 자리에 있던 직원이 어떻게 응대를 했는지 알아야 했고, 그전에 응대를 하던 직원이 누구였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그래서 해당 상황을 전달해주던 팀원에게 물었다. 그 직원이 누구였냐고.
이름 석 자를 듣자마자 아니 하필이면...이라는 탄식부터 나왔다. 잦은 말실수 때문에-보호해주고 싶어도 참 어려운, 안팎으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갑분싸 전문가-수차례 주의를 받았던 분이었다.
"또 그분이에요?"
내 말을 듣던 팀원이 발끈했다.
"왜 직원 탓으로 바로 몰고 가세요?"-
왜 직원의 책임부터 묻는지 황당하다는 팀원의 말. 담당 직원은 우리의 규정대로 제대로 응대했고, 한치의 실수도 없었으며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다짜고짜 직원의 책임을 물으니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단다.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의 이러한 보고를 나는 이번 한 번뿐이 아니라 수차례 보고 받고 처리하고 있었으며, 내 식구 감싸기 전에 사실관계 파악부터 먼저 해야 했고, 해당 직원이 어떻게 일을 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고. 직원이 힘쓰고 노력하는 거 누가 모르냐고. 하지만, 그전에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미리 알아내고 정리해야 추후에 더 일어날 수 있는 있는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고. 고객이 진상이네 어쩌네 하기 전에, 우리 또한 그 고객에게 실수한 부분이 있지 않겠냐고. 여기에 한 마디 더해서, "또 그분이에요?" 말하게 된 이유를 정말 모르겠냐고.
그렇게 한창을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아랫배의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밑 빠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왜지, 이상한데. 얘기하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간 나는 왜 아랫배의 느낌이 좋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하혈이었다.
모든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들이받는 재주가 있는 내가 '신경성'이란 수식어를 단 몸의 다양한 이상 증세를 겪으며 이렇게까지 현타가 온 적은 없었는데. 그 빨간색이 흘러내린 걸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게 이렇게까지 될 일이었어?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아이고 어지럽기까지 해.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업무부터 일단 마무리 짓자, 일단 정리하고 눕자, 그렇게 팀원과 업무와 관련한 상황들을 정리하고-발생 상황 때문에 추가로 일어난 문제는 다음 날의 내가 처리했다.-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부모님은 내 얼굴을 보고 새하얗게 질렸다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빨간 것을 보면 꼭지가 돈다는 말을 종종 들은 적이 있는데, 나의 경우엔 꼭지가 돈 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허무해졌다.-허무했다, 라는 말보다 무언가에 의해 내 소유의 모든 것-감정, 생각, 가치관, 세계관 등-을 박탈당한 거니까 허무해졌다는 말로 표현해본다.-유의미한 게 무의미해진 이 날. 솔직히 말하자면 '무의미의 날'은 이미 와있었다. 나는 그걸 직접 마주하기 싫어서 애써 외면했고, 그래서 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 눈에 안 보이게 보자기를 하나 덮어놨었던 건데, 그 보자기가 갑자기 흘러내리면서 가려져있던 '무의미'가 드러나게 됐고 결국 허무함의 대폭발로 이어졌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지?'
'그런데, 왜 나는 왜 외면하고 싶어 했던 걸까.'
외면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
'실패'와 '낙담'을 겪었던, 지난 연말에서부터 올해 연초 사이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리고 이 '일'은 앞으로의 상황을 타개하고 미래를 위하여 공부하던 나의 의지를 꺾어버렸고, 글도 못 쓰게 만들어 버렸으며,-브런치에 올라가야 하는 글을 한 글자도 못 썼다는 것-단순한 생각조차도 못하게 막아버렸으니까.
그 '일'이 의욕을 다 앗아가 버릴 줄은 몰랐다.
나의 등에 칼을 꽂은, 이젠 동료라고 부르기도 싫은 누군가와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