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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Jun 26. 2020

경쟁의 굴레

   

오늘이 D외고 2학년 일어회화 받아쓰기 시험이니 어제는 직전대비 시간이었다. 제법 긴 문장을 교과서 단어와 필기 단어로 새로 만들어 두 번씩 읽어 주면 학생들은 팔이 빠져라 쓰는 시험이다. 내 역할은 교과서 단어와 문장을 정리해 주고 시험지를 만들고 나 역시도 학교 선생님의 마인드로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많으면 재미있는 작업이다.     


어제 아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다른 학원 선생님 프린트가 더 단어가 많았단다. 그건 자신들의 필기를 나에게 미리 줘야 하는데 내가 받은 학생이 필기를 별로 하지 않는 아이여서 단어 양이 차이가 나는 거였다. 받아쓰기 시험 문장도 그 단어들을 사용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낭패였다. 늘 꼼꼼히 필기하던 J는 이번에는 책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자신들은 필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주제에 나의 무능함을 탓했다. 그전까지는 1년이 넘게 J의 필기로 넘겨왔던 거다. 내가 안쓰럽게 보였는지 보다 못한 J가 책을 내주었다. 이미 만들어온 모의시험은 다 했고 3시간 수업이 끝나가는 때라 복사를 해서 다시 문제를 만들어 녹음해서 보내기로 했다. J의 책 열몇 장을 복사를 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남아서 하고 가려고 하는데 J도 가지 않았다. 자신의 책의 복사본을 받아가야 되겠다고!    


반쯤 하고 주고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한다고 하자 꼭 폐기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집에 돌아가서도 문자가 왔다. 자신에게 다시 달라고. 폐기한다고 하자 종이가 아깝다며 달라고. 조금 짜증이 나긴 했지만 알겠다고 했다. 자정이 넘어 그 학생 엄마에게 긴 문자가 왔다. 내가 못 미더웠는지 엄마에게도 의논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노력을 우리 반 친구들에게 제공만 했고 감사는커녕 마음의 상처만 받았고 자기보다 심지어 성적이 더 좋은 적도 많았다고!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아는 것이 아니었다. 필기 정도 보여 줘도 뭐 그리 대수일까 싶은데 무한 경쟁 속에 내몰려 있는 그들의 입장들은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르다. 25명 중 1등급 1명, 2등급 2명, 3등급 4명... 원래 공부 잘하는 아이, 일본 살다 온 아이, 소위 일본문화 오덕들이 많으니 10등 안에 들기가 정말 어렵다. 외고 밖의 사람들은 D외고 나와서 스카이 못 가면 바보라고 한다고 자기들끼리 늘 한숨 쉬며 말한다.     


유럽의 대학은 평준화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교육제도를 그대로 받아서 대학의 서열화가 되었다고 한다. 일류 의식과 경쟁의식 속에서 청소년들이 잠도 못 자고 별 도움도 안 되는 지식들을 머리에 넣고 있다. 책은 읽을 시간도 없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미디어광인 내가 단언컨대 책이 가장 재미있는데 말이다. 늘 책으로 공부하지만 진짜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없는 이 나라는 가짜다. 수능이 국영수 하다못해 일본어도 점점 어려워진다. 당연한 이치다. 시험은 계속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기출을 이미 공부하니 말이다.    


대학은 성적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니 대학을 나와도 자신의 적성과 길을 모르겠다는 제자들을 숱하게 본다. D외고, Y대를 나온 제자가 일본에 취업하고 싶다고 자소서 첨삭을 부탁한 적이 있다. 부모의 기대도 부담되고 한국의 대기업 생활도 지긋지긋하니 일본으로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그래서 물었다. 뭐가 하고 싶은데? 그러자 저는 농사를 짓고 싶어요. 일본에서는 가능하니까요. 왜 우리나라에서는 안 돼? 당연하죠! 부모님이 그 꼴을 못 보시죠!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나라가 더 발전을 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경쟁을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스카이를 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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