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학원은 다르기는 다르다. 스튜디오가 있고, 머리와 메이크업을 하고 오라고 한다. 메이크업 가격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다. 다 늙어서 얼굴에 뭐 좀 더 바른다고 학생들이 더 올까 싶다. 사실 영상은 많이 찍어 봤는데 무얼 새삼스럽게 남에게 받는 메이크업인가 싶다. 코로나 전이니 벌써 3년도 넘은 거 같다. 내 학원을 접고, 수업이 뜸해지고 시들해졌을 때, 유튜브를 일 년가량 열심히 했다. 매일 찍고 편집했다. 대학 전공이 신문방송이라 나름 재미도 있었다. 못다 한 방송의 꿈을 이룬 셈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대형학원의 수업 제안에 바로 수락하고 말았다. 도저히 경제적으로 답이 보이지 않았다.
대형학원의 수업은 늘 하던 외고 내신 수업이다. 한 군데 나가니 곧 다른 곳에서도 러브 콜이 왔다. 지출이 적으니 그런대로 학원 할 때 생긴 부채를 갚아 나가며 나오라는 대로 수업을 하니 유튜브 영상을 찍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대형학원의 외고 내신 수업은 그야말로 장사꾼이다. 시험지를 사고팔고! 강의는 오지 않고 교재와 모의고사만 사는 학생들도 많다. 코로나 시대라 더욱 심해졌다. 처음에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회의감도 들고 요구하는 학생들도 미웠다. 익숙해지는 데에 꼬박 3년이 걸린 거 같다. 내신 한 번 한 번이 다 수능인 셈이다. 수시라는 괴물 같은 입시제도가 학생들도 덩달아 괴물로 만들고 있다.
며칠 동안 옷도 고민하고 머리도 자르고 화장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송 적합 화장을 하고 스튜디오로 갔다. 지하에 있는 꽤 큰 공간이었다. 대치동 한가운데 이런 큰 공간을 쓰는 것이 맞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내가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웬 걱정인가 싶었다. 친절한 청년이 맞이해 준다. 편집은 해 주시나요? 아니오, 앞과 뒤 정도만 다듬어 드립니다. 네? 그럼, 중간에 실수해도 어쩔 수 없는 건가요? 네, 저희가 영상 전체를 보지는 않습니다. 이미 영상을 찍고 있는 선생님이 있어 밖에서 훔쳐보니 뒷배경 전체가 거대한 화이트보드로 되어 있다. 그래서 미리 ppt자료를 보내라고 하는군...
화장을 고치고 내 차례가 되어 촬영실로 들어간다. 자료는 머릿속에 다 있고 그래도 뭐라도 쓰면서 할 수 있나를 물어보니 역시나 그 배경이 전자 칠판이란다. 잠시 쓰는 법을 알려 준다. 지우는 법도 알려 주는데 거기에서 맥이 탁 풀린다. 저걸 나 혼자서 쓰고 지우 고를 금방 할 수 있을까 싶어 진다. 그 방에서는 혼자만 촬영을 하니 실수를 하면 카메라를 끌 수도 없고 사람을 불러 가며 하면 너무 민폐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온다. 저기, 제가 그냥 찍어서 보내드려도 되나요? 핸드폰으로... 네!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뭐지? 의외로 더 생기 있는 답이 돌아온다. 아아, 그게 더 편하신가 봐요? 네.. 뭐...
준비 없는 자의 말로다. 하루를 아니 이틀? 사흘을 고민하고 시간 배분을 했지만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려면 외모뿐만 아니라 좀 더 스마트한 인간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도 너무 젊다. 올드한 생각으로 안일하게 있어서는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갱년기와 더불어 급격하게 모든 것이 느슨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