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학생들에게 말한다. 대학보다는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해! 그럼 학생들은 되묻는다. 자신의 브랜드요? 쌤의 브랜드는요? 차센세? 그렇지! 맞아! 내 브랜드는 차센세야! 그 브랜드화에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 앞으로의 시대, 아니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외국어와 글쓰기라고 생각해! 그럼 학생들의 얼굴에 대부분 실망이 스친다. 뭐야, 결국 일본어 열심히 하라는 얘기라며. 나름 난 큰 깨달음이 있어 하는 말인데 학생들 반응에 나 역시도 서운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원할 때 모든 것은 받아들여지므로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소중한 것을 주어도 깨닫지 못한다. 내가 그랬듯이!
많이 읽으면 쓸 수 있다. 읽어야 쓰게 된다. 그러나 읽기만 하면 안 된다. 들어가는 것이 있으면 나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늘 몸도 마음도 변비다. 이유는 뭘까? 사는 게 바빠서라고 늘 변명 아닌 변명으로 살아왔다. 덕분에 여기저기 끊임없이 글쓰기 수업을 기웃거리는 것은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 병원을 찾거나 유산균을 먹거나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물론 그런 곳은 다 숙제라는 것이 있다. 남자선생님들과는 술로 친해져서 뭉개고 여자선생님은 별로 못 만나 봤다. 남자가 가르치는 글쓰기에서 낸 숙제로 돌아오는 첨삭에서 느낀 것은 아 이해받지 못하는구나! 이었다. 그들은 형식이나 틀이 중요하다. 드라마 역시 대사보다는 사건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글이란 뭘까? 진솔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진실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그런 면에서 내 글은 항상 나쁘다. 진실하기는 하나 솔직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빈약하다고 혼이 났다. 그 이유를 늘 생각하고 있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난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이라서 인 거 같다. 내가 사람이나 사물에 금방 질려 버리니 내 자신도 남에게 질리기 싫어서 감추고 감추는 거 같다. 알려고도 하지 않고 떠나가는 사람이 더 많은데 말이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멍청한 짓인데 말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숨기려 하면서 무슨 작가를 꿈꾸는지 모르겠다.
작가를 꿈꾸는 이유는 세상을 이롭게 하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어서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는 먹고 살 수 없으면 그건 불가능한 얘기다. 유산도 없고 돈 벌어다 주는 남편도 없다. 부양가족은 있고 난 심지어 낭비벽도 있다. 더 늙으면 개도 키우고 싶고 현재도 통영에서 막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도 맹렬히 키우고 싶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유행어처럼 꿈을 꾸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로 버티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안다. 진솔에 내 감정의 절제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진솔에 내 배설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계산 된 구성과 완벽하게 날것처럼 보이는 말들 속에 기승전결이 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더 어려워졌다. 그냥 솔직함도 안 되는데 그 솔직을 넘어 의도와 기술이 숨어들어야 좋은 글쓰기가 된다. 한마디로 환골탈태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겠다. 이렇게 하면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덜 읽어서 안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정신적 변비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브랜드화는 늘 학생들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