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문학과에서 시청률에 대해 공부한 것이 벌써 30년도 넘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일반인이 모르게 장치를 불특정다수의 텔레비전에 설치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통계학의 영역이었다. 설문조사 조사와 마찬가지로 통계를 내어 수치로 보여준다. 이 얼마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란 말인가? 어릴 적에도 그런 걸로 사람들이 정말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지 안다고 라고 어이가 없었다.
난 리모컨을 쉬지 않고 돌려서 본다. 아까운 시간에 책을 보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는 것을 봐야한다. 재미있는 것은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거나, 넋이 나가게 웃게 해주거나, 실컷 울게 해주는 등 무언가 감정과 뇌를 건드려 주는 것들이다. 이런 내가 그래도 진득하게 보게 되는 것은 역시 드라마다. 16부작이 많은 요즘 4회까지 보면 일반적으로 충성심이 생겨 끝까지 본다고 한다. 글쎄 난 그렇지도 않다.
얼마 전에 끝난 김은숙 작가의 더 킹은 정말 고통을 감내하며 끝까지 봤다. 드라마가 끝난 후 여러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시청률 때문이다. 그녀의 실패를 다들 기뻐하는 눈치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소위 드라마를 쓴다고 하면 시청률 대박을 내어야 하고 그 대표적인 작가가 그녀였다. 나 역시도 공부라는 명분하에 늘 지켜봐 왔다. 이번 작품은 한 마디로 「그녀가 너무 멀리 갔다」였다.
보통 어느 글쓰기나 드라마 쓰기도 마찬가지라고 말을 들어왔다. 중학교 졸업한 수준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써야한다. 그건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였기 때문일 거다. 더 킹은 불친절하기 그지없었다. 평행세계도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들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백마 탄 왕자를 보이기 위한 설정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만 들었다. 두 세계의 두 명씩 등장하는 인물들과 마지막 회에 나왔던 수많은 다른 세계의 동일인물들은 뭘까? 그렇게 여러 세계에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그녀의 특기인 사랑이야기를 하려고 절절함을 주기 위해서 너무 멀리 갔다.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특권으로 자본을 끌어다 쓸 수 있기에 가능한 스토리고 배우들이었건만 초심을 잃은 그녀에게 애정이 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허세만 느껴졌다. 난 이만한 이야기를 구상할 수 있어! 난 이런 배우들과 작업할 수 있어! 정작 중요한 우리들, 보는 사람이 빠졌다. 우리는 코로나의 시기를 견디고 있고 자영업자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그녀의 드라마를 더 기다린 이유도 그래서다. 이 두려움을 잊게 해줄 산뜻한 러브스토리를 기대했다.
금수저 오브 금수저인 남자 주인공은 멋지게 보이지 않았다. 국민들을 돌보지 않는 왕이 무슨 영원한 군주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녀의 팬이라고 해 온 내 자신까지 초라해지는 시간이었다. 멀리 간 그녀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초심으로 돌아가 스케일보다는 위로가 되는 이야기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를 해 주길 바란다. 시청률을 잊고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어루만져 주는 그런 작가가 다시 되어 주길 팬으로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