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19일
이번에는 친정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서 도망치듯 카페로 향했다.
집 근처에 ‘크로크’라는 신상 카페가 생겼는데, 꽤 규모도 크고 왠지 좀 성수동 느낌도 나서 도망치기에는 여기가 딱이겠다 싶었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는 노랫소리가 너무 커서 블로그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지만 오늘은 정 반대였다. 어서 나를 기분전환 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침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아이는 밥 먹고 나서 꽥꽥거리는 일 없이 대체로 혼자서도 잘 파닥거리며 이것저것 집어대고 놀았다.
어제는 비록 저녁에는 마녀시간이 세찬 폭풍처럼 들이닥쳐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낮 시간 동안은 ‘이 정도면 난이도 중하 정도라고 할 수 있겠군’하고 속으로 되뇌기도 했다. 눕히면 큰 저항 없이 자는 하루였다. 드디어 먹구름이 걷혀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도 해볼 만 하겠군, 하고 작은 희망을 가져보는 아침이었다.
무엇이 변수였을까? 아이를 데리고 스타벅스를 찍은 다음, 내키는대로 구의공원 대신에 친정을 방문했던 일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애초에 구의공원이든 친정이든 즉흥적으로 카페 다음의 행선지를 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까?
덥고 습한 여름 날씨와 더불어서 일정하지 않은 노면 상태와 “치이익!”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버스 등의 강력한 소음으로 인해,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유모차에서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겨우 아파트 단지 앞 건널목에 다다라서야 아이는 잠들었다. 나는 그 입면이 너무 아까워서 15분 정도 단지를 뺑뺑 돌며 유모차를 밀었다.
어제 뭘 잘못 먹기라도 했는지 화장실이 몹시 급했지만……. 그런 건 우선순위의 저 뒤로 미룰 만큼 마음이 살짝 절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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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무슨, 친정 다녀오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수유텀이고 깨시고 뭐고 간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아이가 그에 맞추도록 하는 방식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주위의 육아 동지들을 보면 아기띠 하고 대전을 다녀오는 친구도 있고, 이제 막 이유식 시작한 아기 데리고 부산 여행을 다녀오는 친구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책에서는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진작 다녀올 걸 그랬다’ 싶도록 좋았더라는 얘기도 했다.
옛날에 애들 대여섯 명씩 키우던 시절에는 수유텀이나 깨시 관리 같은 것들 누가 신경이나 쓰면서 키웠을까? ‘오늘 아기가 낮잠을 2시간 25분밖에 자지 못했으니 더 재워야겠다’, 이런 생각을 누가 했겠냔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 태어난 아기들이 전부 다 수면부족으로 발달장애 성인이 된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를 아기체육관에 내버려두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어느새 아기체육관은 방수포가 깔린 기저귀 갈이대가 된 지 오래였다. “여기서 이거 가지고 놀고 있어봐, 엄마는 화장실 좀 다녀올게. 울어도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혼잣말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아이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러나 아이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도 울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과잉보호를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로 살고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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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유난히 아이가 잘 울고 잠도 줄어들었다는 생각에, 어제는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라는 책을 또다시 집어들었다.
그 유명한 ‘원더윅스’의 개념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침팬지 연구를 하다가 이 모든 게 시작되었다고 했다. 새끼 침팬지들을 살펴보니 비슷한 단계별 발달 패턴을 보였고, 혹시나 해서 사람을 관찰했더니 사람 아기도 그랬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채널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선생님께서 가라사대, 원더윅스 같은 것 공부할 필요 없다고 하시기에 한동안 책을 읽다 말고 있었다. 하긴 그 책에서 나온 원더윅스 표에 루나의 주수를 표시해봤는데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천둥번개 표시가 그려진 날짜는 오히려 평온하기도 했고, ‘대체 왜 이 날은 천둥번개 표시가 없지?’ 싶도록 애먹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혹시 원더윅스?’하는 생각이 들었고, 작은 실마리라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책을 펼쳤다. 아니나 다를까 4개월 원더윅스는 굉장하다고 책에서는 이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4개월 원더윅스는 무려 한 달 짜리였고, 인터넷 글들을 찾아봐도 마라맛 4개월이라는 간증들이 넘쳐났다. 대책도 없고(있다면 유모차 끌고 나가기 정도?), 그저 ‘버텨!’를 외쳐야 하는 기간이었다.
책에서 말하기를, 이 시기에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우는 것을 더 많이 내버려둔다고 설명했다. 무척이나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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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귀마개를 샀다.
살다살다 육아를 위해 귀마개를 구매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애가 힘들어서 우는데, 그 소리를 차단하려고 귀마개를 산다니? 비정한 어미인지고…….
하지만 아기는 아기였고, 육아는 노동의 일종이 맞았다. 아기의 잠투정은 때로는 “이웅이웅……”하는 혼잣말에 그칠 때도 있으나, 그건 정말 100번 중에 5번 정도(혹은 그보다 적었으려나?)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대개 울거나, 좀 많이 울거나, 자지러지게 울다가 잠들었다.
오늘만 해도 아이가 얼굴이 자주색이 되도록 “끄에에엥!”거리며 잠투정을 부렸다. 얼른 화장대로 가서 귀마개를 가져왔다. 아이가 삼키면 큰일이므로, 양쪽 귀마개가 서로 끈으로 연결된 제품을 일부러 구매했었다. 얇은 원뿔이 되도록 잘 눌러서 귀에 꽂았다. 그러자 귀마개는 원래 모습으로 부풀며 복원되었고, 아이의 울음소리는 원래 데시벨의 1/4 수준으로 작아졌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우는 날이었다. 어떤 때는 ‘이러면’ 안 울거나, ‘저러면’ 안 울기도 했는데,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었다. 아이를 눕히고 머미쿨쿨로 눌러서 손을 잡아준 다음, 앞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러다 3회 이상을 빽빽대며 울면 세워서 들어올리고 <섬집아기> 1절을 부르며 트림을 시도해줬다. 노래가 끝나면 다시 눕히고, 이런 식으로 기계적으로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가끔은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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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재웠건만, 아이는 매번 40분을 못 채우고 낮잠에서 깨어났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깨어난 아이를 들쳐업고 거실로 나와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장소는 당연히, 기저귀 갈이대가 된 아기체육관에서. 아이는 또 찡얼대려다가 이내 바스락 소리가 나는 패치를 만지작거렸다.
정말 쉽지 않은 하루군! 나는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져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운을 차려야 했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 손을 비누로 씻고, 돌아와서 아이 앞에 섰다. 그리고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Stay in the middle……!”
그렇게 뉴진스의 <Ditto>를 부르며 몸을 좌우로 움직였다. 노래에 맞춰서 간단하고 반복적인 춤을 추고 있으니, 아이가 바스락 판다를 조물거리다가 시선을 이 쪽으로 돌렸다. 노래와 춤이 계속되자 아이는 소리내어 웃었고, 계속해서 나를 구경했다.
너에게는 이게 첫 공연 구경이겠구나? 그럼 흥미로울 만도 하지.
아이의 웃음에, 내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웃으면서 재롱잔치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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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육아를 비교적 쿨하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잠을 안 자서 고생했다던 회사 선배에게는, “아이가 안 자면 방에 가둬두면 되지 않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그 때 그 선배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얘기했던 방식은 퍼버법에 다름없었다. 애를 방에 냅두고, 울든 말든 나와서 경과를 지켜보는 것. 그러다 보면 애가 지쳐서 잠들지, 별 수 있겠나?
하지만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면, 무려 오늘처럼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빠지는 날일지라도 그 모습을 내도록 지켜보다 보면 마음이 아파왔다. 물론 어제 낮에는 어쩐지 아이의 울음에서 “으아 ㅇ발 ㅇ나 잠 안오네!”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서 잠시 내버려뒀더니 신기하게도 잠들었지만……. 그래도 이 조그맣고 가여운 아이가 피로를 주체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까지 괴로워지곤 했다.
지난번에는 아이가 심하게 잠투정 부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눈물이 핑 돌 지경이 되어버렸다. 바로 아이를 꼭 껴안고 얼러주었는데, 정말 같이 울고 싶은 마음이 여기까지 차올라왔다.
어젯밤에는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데, 저녁의 마녀시간 때 아이가 오열하던 게 떠올랐다. 그 좋아하는 목욕을 시켜주려고 아기 욕조에 뉘여 주었건만, 얼마나 피곤했으면 욕조에서도 “으앙!”이 터져나왔다. 목욕이 끝나고 나와서 타올에 감싸였을 때 자지러지게 울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속으로는 ‘그러게 아까 여섯 시 쯤에 자라고 할 때 좀 자지 그랬어……’라고 몇 번을 되뇌었다. 그리고 내가 잠을 깨운 것도 아니고 본인이 안 자겠다고 버텼으니 나로서는 어찌할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눈앞에는 아이의 울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본인(=아이)은 범퍼 침대에서 꿀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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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아기가 언제 울 지 눈치 보면서 설거지와 빨래 등을 하고, 낮에는 잠투정 하는 아이에게 “으흠 네가 이렇게 울면 엄마의 육아 난이도가 올라가잖니”라고 혼자 읊조리고. 그러다 보면 저녁이 되고 ‘육퇴’를 맞이하지만, 8시 반만 되어도 ‘이제 가서 자야 내일의 체력을 비축하는데……’라고 초조해하는 나날들.
그마저도 침대에 누우면 아이가 울던 게 눈앞에 아른거려 잠을 못 이룬다니. 또 한편으로는 ‘지금 자야 새벽에 칭얼대거나 아침에 종달기상을 해도 얼추 잘 수 있는데’라며 잠을 청해보지만, 오히려 억지로 자려고 해서 그런지 잠이 쉬이 오지 않는 밤들이 이어졌다.
어디 욕조 딸린 숙소에 가서 느긋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생겼다. 예전에 부산 아난티 갔을 때 휴식하기 참 좋았는데. 그게 아니면 일본에서 묵었던 완전 미니한 호텔의 욕조라도 좋고. 아예 온천 여행을 간다면 소원이 없겠구만.
아이 낳기 전에 회사 다닐 때는 일이 좀 힘들면 ‘연차 쓰고 어디 놀러 가야겠다’라며 휴가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애를 떼놓고 혼자서 가긴 어딜 가려고. 물론 진짜 가려면 갈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겠다. 남편이나 친정 어머니께 부탁을 드리고 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이가 계속 눈에 밟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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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쉬기 위해서는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상황이 이렇게 불편할 줄은 몰랐다.
남편에게 맡긴다면? 한 번은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 맡기고 밖에 나가 있을 때 홈캠을 본 적이 있었다. 남편은 아이를 재워두고 거실에서 아기 빨래를 개고 있었다. 혼자서 아이 재우고 런닝 셔츠 바람으로 집안일 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짠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맨날 하는 일이기는 한데……. 아무튼 와이프 카페 외출하라고 본인은 주말에 빨래 개고 있는 게 괜히 미안해졌다.
남편이 아니라면 친정 어머니께 맡길까? 아니, 남편은 그래도 본인 아들 돌보는 것이지만 친정 어머니는 그것도 아닌데……. 딸을 성인 되도록 키워놨더니, 이제는 딸의 자식까지 떠안겨드리는 것만 같아진다. 게다가 아기 재울 때는 안아서 흔들어주거나 해야 잠투정이 좀 진정되니까, 이 무거운 7kg 넘는 아기를 어머니께 하루종일 안아서 재워주십사 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6개월도 안 된 아기를 생판 모르는 남에게 돈 주고 맡기기에도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어린이집이라면 선생님 한 명이 1:1로 아이를 돌보는 게 아니라 다대일 관계이던데, 요 쪼그만 아기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낯선 단체생활에 덩그러니 떨어뜨려 놓을 일인가 싶은 과장된 상상이 자꾸만 든다.
이런 마음 상태로는 누구한테 유료로 아이를 맡길 수도 없고, 결국에는 남편이나 친정 어머니를 희생(!)시켜야만 내가 쉴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괜히 답답해졌다. 어째서 선택지가 이렇게밖에 남지 않는 걸까? 그게 아니면 아이를 들쳐업고 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그러면 장소가 달라진 육아일 뿐이지 쉴 수가 없는 걸. 심지어 거기에는 분유포트랑 유팡이랑 기저귀 갈이대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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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런 생활이 언제쯤 끝날까, 하는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 가면? 유치원 가면? 초등학교 입학하면? 글쎄, 육아는 관짝 들어가야 끝난다고 누가 그러던데. 사실 나만 해도 아직까지 어머니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진짜 그 말이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관짝 들어가야 끝나는’ 육아라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가, 어디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계속해서 눈에 밟히도록 소중한 내 아이가 계속해서 내 곁에 있으니까 말이다.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한 부모에게는 내가 하는 투정들이 그야말로 서글프도록 배부른 소리겠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여전히 나는 궁금하다. 내일의 육아 난이도는 얼마가 될까? 상중하 중에서 중 정도면 그래도 좋겠는데. 마녀시간은 어떻게 운영해야 아이가 덜 울고 덜 힘들어할까? 역시 사람은 세계평화보다는 내 손에 박힌 가시 빼는 일이 급선무인가 보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Nathan Dumlao